마이너카드, 컵 6번
추억(追憶)이란 쫓을 추, 생각 억 자로 이루어진 한자어다.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과거의 생각이나 일을 쫓아가서 떠올린다는 의미가 되겠다. 일부러 과거를 떠 올린다는 의미도 될 듯 한데, 추억하는 방법은 사진첩을 본다거나 음악을 듣다가 그 당시가 불현 듯 생각 나거나, 일기나 수첩을 보다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런데 나에게 가장 기쁘고 어메이징 한 일은 추억 속의 인물에게서 직접 전화를 받을 때이다.
며칠 전, 10년도 넘게 연락이 끊겼던, 아끼던 제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저장된 전화번호는 잘 지우지 않는 편인데, 나른 한 일요일 오후, 그 전화 한통에 내 온몸의 세포가 팔딱이고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30대 중반으로 돌아가 씩씩한 심장 박동 소리마저 내 귀에 들리는 듯 했다.
그는 본래 스페인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외가가 있는 천안으로 이주하여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후 서울의 우수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도 자원 입대하여 공군 통역 장교로 복무를 마친 후 우리나라의 최고 전자회사에 입사해서 중남미 주재원으로 지금까지 근무하다가 이제 우리나라에 돌아온것이다.
그와 내가 만난 것은 그가 고 2때 였는데, 예의를 강조하던 나는 학생들이 존대말을 사용하지 않거나 말을 함부로 하면 꼭 지적을 하던 꼰대 같은 담임이었다. 하루는 점심 시간에 우리 반에 들려 전달 사항을 칠판에 적어주고 있었는데, 양치를 하고 교실 안에 들어오던 그가 '선생님 밥 먹었어요?' 하는게 아닌가? 그냥 지나칠리 없는 젊은 꼰대인 나는 지적질을 하고 집에서 쓰는 말을 공적인 교육 기관인 학교에서까지 쓸 필요가 없다는 둥, 존대말이 어디로 놀러 간거냐고 비아냥 섞인 말까지 했다.(내 행동이 부끄럽고 그에게 미안해서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사실, 당시의 나는 젊은 여선생으로서 야생마 같은 남학교에서 살아남으려면 아이들에게 여자로 보이면 안 된다는 이상한 방어심리가 있었고, 그 당시에 남학생만 있는 학교에서 근무 한것도 처음이어서 더 깐깐하게 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학교에서 근무하는 기간에는 단 한번도 치마를 입은 적이 없고, 4살짜리 사내 아이를 둔 젊은 엄마이자 직장인인 나에게 더 이상의 여성성은 필요치 않다고 느꼈다. (참 못 말리는 성격이다!)
24년 전 그 학교는 교실의 학생수도 50명을 넘었고, 애국 조회가 남아 있어, 남학생들이 운동장 조회 때 교장 선생님께 '성실'이라는 구령과 함께 군인처럼 칼 각(?) 경례를 했었다. 학생들의 헤어스타일도 '상고 머리'(군인들의 짧은 헤어스타일)여서 전교생 1800명이 운동장에서 거수 경례를 하면 흡사 (교복입은) 육군사관학교에 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경직되고 보수적인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학교 분위기에서 아이들도 나도 정서적 교류는 사치 정도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 (존대말 사건)일이 있던 날, 그는 늦은 저녁 나에게 전화를 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자기는 점심 시간에 나를 보니, 반가워서 무심코 한 소리라고 했고 스페인에서 한국에 와서 산지 2년 밖에 안되어 존대말을 잘 모른다고 했다. 스페인어가 더 자연스럽고 한국말은 존대말이 있어 어렵다고 했다. 물론 부모님이 한국분들이긴 하지만 우리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것도 대견한데, 세세한 존대말까지 가르치시진 못한 것 같았다.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그의 가정사를 알게 되어 나도 무척 미안했고, 스페인에 남아 계신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서 이모 댁에서 학교를 다니는 그가 갑자기 너무 가여워져서 울면서 죄송하다고 하는 말에 나도 눈물이 났다.
그 후 나는 그를 다른 어떤 아이보다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고, 다른 아이들이 모두 소위 1류 대학에 들어 갈 때, 그가 재수를 하게 되었을 때도 우리는 죽~ 연락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챙겨주었다. 그가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최고의 대학에 들어 갔을 때도, 졸업을 했을 때도 함께 행복해 했고, 한국에 오신지 얼마 안되는 엄마를 암으로 잃었을 때도 함께 슬퍼했고, 그 후 장교 생활을 끝내고 초일류 회사에 들어 갔을 때도 내 아들이 성공한 것 처럼 기뻐했다. 합격하고 입사할 한달간의 여유 시간도 저 먼나라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던 착한 아이였으니, 이런 복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겼고, 그가 결혼해서 남미 주재원으로 떠날 때도 안녕을 기도했다.
그런 그가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을 둔, 애 아빠가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고 연락을 한 것이다!)
< 유니버셜웨이트 타로 마이너 컵 6번 카드 >
나는 그 덕분에 오랜만에 과거의 따뜻한 기억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오래된 친구 같은 제자, 잊고 지내던 소중한 추억을 다시 꺼내 보여 준 그가, 현재의 내 삶에 따뜻함과 기쁨을 주는 선물이 되어 돌아 온 것이다.
그래서 추억은 나에게 현재(present)를 살게 해주는 매개체이자, 선물(present)이 되었다!
현아! 고마워! 곧,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