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오버로크하다1

by 김이성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만나면 몸이 덜덜 떨렸다.

수선집에서 발로 눌러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실을 박는 미싱이라 불리는 기계.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증상은 나를 오버로크 집의 바로 그 재봉틀과 같이 만들어 버렸고, 오랜 시간 동안 때로는 나비처럼 때로는 하늘을 높이 날아오르는 독수리 같아야 할 내 청춘의 날갯짓을 어느 퀴퀴한 냄새 풍기는 창고 안의 망태기 속에 박아버렸다.


아마 내 병의 원인은 집안에서 매일 같이 이어지는 전쟁 때문이었으리라.

지금은 누구를 만나도 멀쩡히 이야기하고, 돈벌이를 위해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받을 법한 잠깐의 스트레스를 받기는 해도, 단순히 얼굴을 맞대어 교류하는 사람 대 사람 간의 관계가 심히 두렵지는 않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매일 두렵고 긴장되는 순간 속에서 삶을 살았다.


학교와 교실이 두려웠고, 새로운 친구와의 만남이 겁났으며, 교탁 앞으로 나가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순간이면 손끝에서부터 온몸이 떨리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관계나 장소, 무언가 심장이 뛰는 일을 시작할 때면 두려움은 증폭되어 이미 나의 시간이 폭설에 잠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도로 한가운데 매몰된 것처럼 과도한 걱정으로 밤새 잠 못 이루게 된 것이다.

그 시절 동시에 겪은 우울 증상으로 약도 먹어보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해결법을 알아보았더니, 나와 비슷한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문제를 치료하는 집단 상담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대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감당하기에는 꽤나 큰돈이 필요했다.

집단 상담 프로그램은 서너 달 생활비에 가까운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좀처럼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반면에 집단상담에 비해서 일대일 상담 프로그램은 10회기를 전부 진행해도 상담소에 따라서 지갑 사정을 이해해 주고, 돈을 적게 받거나 최대한 상담 진행을 도와주려는 고마운 이들이 있었다.

급한 대로 몇 차례의 개인 상담을 받았고, 마음의 상처를 많이 덜어내면서 힘겨운 시간을 버텨 나갔다.


하지만, 개인상담만으로 나를 덜덜 떨리게 만드는 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시간은 흘러만 갔고, 주위 친구들은 때로는 실패하더라도 이런저런 도전을 하고,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펼치는데, 나는 어두운 방구석으로 점점 숨어들어 청춘을 좀먹을 뿐이었다.


언젠가 다 해결되고, 자연스레 먹고살게 될 것이라는 공상과 막연한 기대에 젖은 채 용기를 내서 뛰어넘어야 할 인생의 과제를 앞날에 잔뜩 쌓아놓고만 살아가는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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