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방학 동안에는 영어나 간단한 컴퓨터 자격증 정도를 공부했을 뿐이지 돈을 벌 엄두를 내지 못했다.
누구나 처음은 힘들겠지만,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서 고용주에게 전화를 걸고, 사업장에 찾아가서 이력서를 내밀고, 면접을 보는 과정 자체가 심장을 조여들게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졸업을 하고 나서는 더 이상 학생이라는 핑계거리이자 안전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먹고 살 방법을 물색해야 했다.
엄마, 아빠는 백수가 되어버린 내 앞날을 잠시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서로 싸우는 데 모든 힘을 쓰고 있었다.
심지어 엄마는 거친 일 따위라면 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게으른 태도를 주입하기 일쑤였다.
그런 말을 들을수록 게으름이라는 족쇄를 벗고,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계속해서 어린 아이처럼 길러질 수도, 영원히 갇혀있을 수도 없다'
떨리고 힘들어도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서라도 부딪치기로 결심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일은 목소리도, 몸도 사시나무가 되어버려서 괜스레 이상한 의심을 사거나 처음부터 무능력한 직원으로 낙인 찍혔기 때문에 대신 전단지를 돌리거나 주방에서 설거지를 했으며, 배송 물품을 박스 포장하는 작업 등 가리지 않고, 돈벌이에 나섰다.
하지만 그러한 일은 대개 단기 아르바이트가 많아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돈을 모으기는 힘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원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한 작은 사무실에서 사무 보조로 몇 달간 일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 회사는 내가 차분하게 일을 잘할 것 같다면서 업무를 맡겼다.
하는 일은 주로 다른 사업장이나 관공서를 방문해서 서류를 처리하고, 우편 발송과 컴퓨터로 간단한 자료를 입력하는 일이었다.
특히, 외근이 많았기 때문에 사무실 사람들 사이에서 과도하게 긴장하는 모습을 들킬 일이 적었다.
사무보조 일을 하면서 모은 돈.
그것으로 또 하나의 높은 벽을 넘기로 마음 먹었다.
이전에 염두해 뒀던 사회공포증 환자를 위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청춘을 하루로 따진다면 한낮은 이미 훌쩍 지나 있었다.
참 많은 시간이 이미 썰물처럼 쓸려 내려가서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 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걸어야 한다.
걷다 보면, 푸르른 땅에 다다를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