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이 계절이 바뀌고, 어느덧 동네 감나무에는 단감이 맺혔다가 빨갛게 익어 떨어졌다.
면접을 여러 번 봤지만, 속 시원하게 합격 소식은 듣지 못했다.
새로 산 넥타이를 매고, 옷매무새를 몇 번이고 다듬으며, 거울 앞에서 부족한 질문을 여러 번 연습했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좁은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동안 앓아온 난치병으로 수술을 치르게 되면서 더 주저앉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누워 지내면서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한참 되돌아보았다.
한낮에 마음이 적적하고, 불안해질 때면 사람이 적은 동네 공원을 돌고 돌았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성공 신화란 언제나 손에 잡히지 않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고, 꿈도 포기해야 했고, 번번이 실패를 거듭한 시간만 가득.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고, 난치병도 앓고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부모님의 불화로 인한 상처가 뼛속 깊이 나를 꽁꽁 묶어 얽매고 있었다.
주위 또래를 보면, 스무 살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며 도전으로 사회와 부딪치고, 이성 교제를 해서 사랑도 배우고, 먹고살기 위한 현실 아래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때로는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깊은 고민 없이 발을 내딛는 용기가 참 부러웠다.
그중에는 목표한 대로 탄탄대로로 나아가는 이들도 여럿이다.
수학 문제를 풀 듯이 사회에서 정해 놓은 틀대로, 그 기준에 어긋나지 않은 인생을 나도 살아보고 싶었다.
처음 사회를 향해 발을 내디딘 날, 두근거리는 것을 넘어서 그동안의 날카롭고 차가운 경험이 쌓여 나를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발을 떼고, 입을 열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숨쉬는 한 살야야 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망가뜨릴 만큼 밤을 새고, 주말을 반납한 채 하루하루 버텼고, 동료와 상사, 조직을 위해 희생하며 행복을 흩뿌렸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다.
갖은 노력으로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이름 석자가 박힌 명함이 생겨도 여전히 허전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삶의 동앗줄이 끊어져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버티며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시 일자리를 잃었다.
'이번에는 정말 잘해야지, 잘할 거야'라고 수차례 되뇌고, 열정을 쏟은 만큼 다른 때보다 더욱 외롭고, 길고, 힘겨운 스스로와의 싸움을 마주해야 했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눈을 뜨고 나서부터 그날 눈을 감을 때까지, 오래오래 생각해 보았지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꽃을 심듯이 나만의 향기를 남기는 일.
글을 쓰고,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그 안에 풀어놓은 상처와 행복, 감동과 눈물로 뒤섞인 사람 사는 이야기로 누군가의 마음속 상자를 두드리는 일, 그것이 앞으로 내가 해내야 할 과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