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의 집단무의식

융의 영혼의 지도

다음으로 프로이트의 이론과 쌍벽을 이루는 융의 이론을 뇌과학적 관점에서 설명해 보겠다.


사실 융의 이론은 프로이트의 이론만큼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것은 기껏해야 그의 심리학적 유형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MBTI 정도일 것이다(실제로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에서는 MBTI의 신뢰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많다).


그러나 융의 이론을 차분히, 그리고 깊이 이해해 나가다 보면 인간 정신에 대한 설명의 깊이와 범위 면에서 오히려 프로이트의 이론을 능가하는 통찰이 담겨있음을 알게 된다. 융의 이론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 구조를 넘어, 인간이라는 존재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의 차원과 깊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융이 제시한 이론 가운데 가장 유명한 개념은 바로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무의식은 분명 개인의 정신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융은 오랜 임상 경험과 사유를 통해, 인간에게는 개인을 넘어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무의식의 구조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이후 프로이트는 인간에게는 삶을 향한 본능인 에로스(Eros)뿐 아니라, 파괴와 죽음을 향한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 또한 존재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만으로는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전쟁과 같은 집단적인 파괴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반면, 융의 집단무의식 개념을 활용하면 이러한 이 현상을 보다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세계대전과 같은 국가 간의 대규모 전쟁은, 수많은 개인의 무의식이 하나의 공통된 환상 속에서 결집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개인들의 무의식이 서로 공명하며 하나의 거대한 집단무의식으로 응집되는 것이다. 수많은 개인의 무의식이 모여 하나의 집단적 무의식이 출현하는 이 기이한 현상은 언뜻 보면 신비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을 뇌과학과 양자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의외로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나는 앞으로 이 현상을 ‘그림자의 집단적인 동조 현상’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프로이트와 융의 사상은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학문적 교류를 이어 왔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차이 또한 분명했다. 결국 이 차이는 두 사람을 영원한 결별로 이끌었다. 아마도 이러한 갈림길은 융이 말한 심리학적 유형의 관점에서 볼 때, 두 사람의 사고방식과 지향점이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프로이트의 이론이 수학 공식처럼 질서 정연하고 체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면, 융의 이론은 철학적이면서도 상징적이고 심오한 성격을 띤다. 이런 점에서 프로이트가 경험적이고 분석적인 인물이었다면, 융은 직관과 상징을 중시하는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프로이트가 인간의 정신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구분했다면, 융은 이를 의식, 개인무의식, 집단무의식으로 분류했다. 융이 말한 의식은 프로이트의 의식 개념과 거의 유사하다. 또한 융의 개인무의식은 프로이트의 전의식과 무의식 개념과 상당 부분 겹친다. 그러나 집단무의식만큼은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개인의 삶과 경험에 의해 형성된 정신의 영역이라면, 융의 집단무의식은 태고의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인류 전체의 정신적 유산이 축적된 거대한 집합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집단무의식은 개인의 차원에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고 광대한 정신의 영역이다. 이러한 이유로 융의 이론은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전문가에게도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융은 집단무의식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진화론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참고했다.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수백만 년에 걸친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으며, 이 긴 시간 동안 반복되어 온 생존의 경험은 인간 정신 속에 공통된 심리적 구조를 형성했다. 융에 따르면, 이러한 구조는 조상들의 개별적인 기억이 그대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경험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보편적인 틀이 선천적으로 유전된 결과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정신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집단무의식의 기원이자 핵심이라 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