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마와 아니무스: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

융의 영혼의 지도

다음으로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살펴보자.


아니마(anima)는 남성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의미하고, 아니무스(animus)는 여성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남성성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어느 한쪽으로만 완전히 치우치지 않은 양성적(bisexual)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이 표현에 불편함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생물학적·심리학적으로 분명한 사실이다.


남성을 대표하는 호르몬이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고, 여성을 대표하는 호르몬이 에스트로겐(estrogen)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두 호르몬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몸에서 분비된다. 단지 분비되는 양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성적으로 완전히 순수한 남성이나 완전히 순수한 여성만 존재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성적 지향이 어느 한쪽으로 극단적으로만 치우친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연구가 바로 4화에서 소개한 킨제이 보고서다. 우리는 남성과 여성을 철저히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킨제이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성적 지향은 흑백처럼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선 위에 놓여 있다. 킨제이는 이를 스펙트럼(spectrum)으로 설명하며, 개인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숫자로 나타냈다. 이를 킨제이 지수라고 부르며, 0은 완전한 이성애자, 6은 완전한 동성애자를 의미한다. 그 사이의 숫자들은 다양한 정도의 혼합된 성적 성향을 나타낸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동물들 역시 동성애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모든 행동이 결국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다. 결국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의 비율 차이에 따라 다양한 성적 성향과 심리적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의 개념인 아니마와 아니무스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면 훨씬 이해하기 쉬워진다.


분석심리학자들의 다양한 사례 연구에 따르면, 아무리 남성적인 성격과 근육질의 몸을 가진 남성이라 하더라도 그 내면에는 섬세하고 연약한 여성성이 존재한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는 일종의 심리적 균형을 맞추려는 보상 작용으로 볼 수가 있다. 융이 창시한 분석심리학은 무엇보다도 균형을 중요하게 여긴다. 여기서 말하는 균형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상태, 다시 말해 중용(中庸)에 가깝다. 남성성과 여성성 역시 이러한 균형의 대상이다.


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남성적인 사람에게 여성성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호르몬이 남녀 모두에게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심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 투사(投射, projection)다. 투사란, 자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성격이나 감정, 욕망을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처럼 느끼거나 떠넘기는 심리 작용을 말한다. 마치 영상을 스크린에 비추듯, 자신의 무의식을 타인에게 비추는 것이다. 이 과정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본인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투사를 관찰하면, 자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내면의 무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아니마와 아니무스 역시 이러한 투사를 통해 드러난다.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을 찾는 과정이 바로 그렇다. 예를 들어, 매우 남성적인 성격과 외모를 가진 남성은 여성적인 성격과 외모를 지닌 여성을 강하게 끌어당기게 된다. 이는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균형의 원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융은 인간이 본래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이기 때문에, 서로 반대되는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융은 이러한 상태를 ‘대극의 합일’이라고 불렀다. 이는 의식과 무의식, 남성성과 여성성, 선과 악처럼 서로 반대되는 정신의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진 정신의 상태를 융은 자기(Self)라고 불렀다.


다만 이 균형 상태를 일종의 완성된 정체 상태(더 이상의 발전이 필요 없는)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융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결코 완벽한 균형에 고정될 수 없다. 다만 균형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일 뿐이다. 인간의 정신에너지는 계속 변화하며, 균형의 상태에서 다시 불균형으로, 또다시 균형으로 계속 변화한다. 결국 우리는 상대 이성에게 투사한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통해, 자기라는 균형의 상태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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