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말할 수 없는 욕망

융의 영혼의 지도

다음은 그림자다. 그림자는 융 심리학에서 가장 깊이 있고도 매력적인 이론 중 하나다.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의 핵심 개념인 그림자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왜냐하면 그림자 안에는 우리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욕망과 충동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그림자를 다루기 위해서는 자아, 즉 프로이트가 말한 의식의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림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밖으로 나오려 발버둥 친다. 그리고 종종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순간 우리는 낯설고도 기이한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하며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사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어렴풋이 알아차릴 기회를 갖기도 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투사(projection)를 통해서이다. 앞서 설명한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주로 상대 이성에게 투사된다면, 그림자는 대체로 동성에게 투사된다. 그러나 투사될 때의 정서적 반응은 정반대다. 아니마(아니무스)의 대상이 나에게 강한 쾌감과 끌림을 준다면, 그림자의 대상은 나에게 강한 불쾌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불쾌감의 강도가 크다는 것은, 곧 나의 그림자가 그만큼 어둡고 부정적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독 상대하기 싫은 동성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직장 상사나 동료, 혹은 부하 직원 등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분석심리학에 따르면, 이는 그 상대방이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정한 사람을 향해 강한 혐오나 거부감이 치밀어 오를 때가 바로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는 바로 그때, 그림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잘 봐둬! 저게 바로 너의 진짜 모습이야!”


나는 동료 직원의 추악한 그림자를, 그 직원 본인의 투사를 통해 실제로 목격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시내의 한 기관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회식 자리에서 남성들의 성매매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유독 격렬하게 분노를 표출하던 직원이 있었다. 당시 이 직원은 직장에서 ‘딸바보’로 불릴 정도로 가정에 충실하고 성실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과도한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 후, 경찰서에서 무시무시한 공문 한 장이 도착했다.


‘제목: 공무원 등 범죄 수사 개시 통보’


놀랍게도 그 직원이 성매매 혐의로 적발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누구도 이 공문을 쉽게 믿지 못했다. 그러나 이 공문이 도착한 이후, 그 직원은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제 곧 사무관 승진을 앞둔 공무원이 왜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이후 나는 그 직원이 왜 그토록 성매매 문제에 대해 격렬하게 비판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무의식 속에 억눌려 있던 어두운 욕망을 외부로 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의 그림자는 자아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을 것이다.


“아내에게 싫증이 난 거 아니야? 그렇다면 다른 여성을 만나보는 건 어때? 하지만 너의 이런 생각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모두 너를 비난할 거야. 그러니 차라리 네가 먼저 성매매는 절대 안 된다고 비판해 보는 건 어때?”


그는 타인이 자신이 마음속으로 욕망하던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심리적 투사를 일으켰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을 만나고 싶다는 욕망은 사회적 비난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림자 속으로 깊이 숨어버렸다. 그러나 그림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뭐 어때? 인생은 짧잖아. 죽기 전에 마음껏 즐겨야지. 들키지만 않으면 돼!”


하지만 그림자 속에는 이처럼 부정적인 요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창조적인 영감(靈感) 역시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는 뇌과학적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한 사실이다. 그림자에 해당하는 뇌의 부위인 편도체는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기관이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새로운 연상과의 결합, 즉 영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예술가의 영감이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일반인에 비해 갑작스럽고 강렬한 창조적 영감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이성적 사고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이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수백만 년 동안 인류의 조상들이 치열한 생존 과정을 거치며 축적해 온 무의식적 경험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뇌 깊숙한 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무의식 속에는 생존과 진화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긍정적인 요소들 또한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무의식이 바로 예술가들의 창조적 영감의 중요한 원천인 것이다.


지구는 약 45억 년 전에 태양계에서 형성되었고, 생명체는 약 35억 년 전에 탄생했으며,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최초의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는 약 400만 년 전에 출현했다. 따라서 우리의 편도체 안에 자리한 집단무의식의 역사 또한 약 400만 년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장구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편도체에는 방대한 집단무의식이 축적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잘만 활용한다면 인생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실제로 집단무의식을 창조적으로 활용해 눈부신 성취를 이룬 인물들도 적지 않다.


물론 집단무의식에는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함께 공존한다. 따라서 이를 파괴적인 방식으로만 활용한다면, 개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 더 나아가 인류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이처럼 그림자 속에는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 어두운 악마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밝은 천사가 야누스(Janus)처럼 동시에 존재한다. 파멸로 나아갈 것인가, 성장으로 나아갈 것인가는 오로지 우리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그림자가 편도체와 깊이 연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편도체의 기능에 있다. 편도체는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뇌 기관이다.


그렇다면 감정이란 무엇인가? 감정이란 어떤 사건이나 자극에 대해 마음속에서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주관적인 기분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이 느끼고 있는 현재의 감정을 말로 정확히 표현해 보라. 상대방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보라. 아마도 ‘기분이 좋다’, ‘기분이 나쁘다’와 같은 매우 단순한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적 표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감정이 본질적으로 무의식적인 과정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감정이 무의식적이라면, 감정을 만들어내는 편도체 역시 본질적으로 무의식적인 영역에 속한다. 특히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에서 비롯된 공포나 불안과 같은 유전적 감정은 더욱 그러하다.


이제 이러한 그림자의 어두운 욕망을 실제 꿈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다음에 소개할 꿈은 과거 나와 같은 기관에서 근무했던 공무원 C의 꿈이다.


꿈의 내용: 장례식장이다. 누군가 죽은 듯하다. 가족들이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족 중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것 같다. 검은 옷을 입고 울고 있는 한 여인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형수다. 형이 죽은 것 같다. 나는 슬퍼하는 형수의 손을 잡고 위로해 준다.


이 꿈의 배경에는 C의 개인사가 깊이 작용하고 있다. 젊은 시절, C는 형의 상견례 자리에 함께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C는 형수에게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녀는 C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그려 왔던 이상형이었다. 그 순간 C는 형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장애가 있는 형이 자신의 이상형과 결혼한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형이 결혼한 이후, C는 일부러 핑계를 만들어 형과 함께 형수와 자주 만났다. 그럴 때마다 그는 형이 아닌 자신이 형수의 남편이 되는 상상을 반복했다.


이 꿈을 꾸기 얼마 전, C는 TV를 통해 ‘형사취수제’라는 단어를 접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고구려의 역사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던 중 이 제도를 알게 되었다. 형사취수제란 형이 죽은 뒤 그 아내를 다른 형제가 부양하는 제도를 말하며, 전쟁이 잦았던 고구려 사회에서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한 풍습이었다.


당시 총각이었던 C가 형수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은 앞서 설명한 아니마의 투사로 이해할 수 있다. 남녀가 서로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투사하게 되면, 이성적 판단 능력은 현저히 약화된다.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만 나고, 그 사람을 만나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이는 뇌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의 영향이다. 이미 설명했듯이, 도파민은 강력한 보상 신호를 만들어 특정 대상에 집착하게 만든다. 당시 총각이었던, 그리고 지금도 총각인 C가 굳이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형수를 보려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C는 형보다 열 살이나 어렸다. 형수 또한 C보다 열 살이 많았다. 그럼에도 C는 형수에게서 강렬한 아니마의 끌림을 경험했다. 사실 C는 열한 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잃었다. 그 이후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은 늘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C에 따르면, 형수에게서 어린 시절 어머니의 향수가 떠올랐다고 한다. 사랑이 넘치고 따뜻했던 어머니의 시선을 형수에게서 다시 느낀 것이다.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무의식적으로 부모와 닮은 이성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C처럼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경우, 그 상실감으로 인해 부모와 유사한 이성에게 더욱 강하게 끌리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C의 경우, 그 대상이 하필 형의 아내인 형수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그는 형에게 깊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고, 어릴 때부터 자신을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던 형이었기에 그 죄책감은 더욱 컸다. 당시 C는 혹시라도 형이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알아차릴까 봐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처럼 형사취수제를 통해서라도 형수를 갖고 싶다는 욕망, 이것이 바로 C의 검은 그림자다. 형수와 함께한 자리에서 C가 형수의 눈을 깊이 바라볼 때면, 형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고 한다. 이는 C가 형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통해 형에게 느꼈던 공포와 불안이라는 감정의 표출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핵심 기관이 바로 편도체다.


여기서 말하는 공포와 불안은 스릴(thrill)이라는 감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릴은 공포 영화나 위험한 놀이기구를 탈 때 느끼는 공포와 불안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즐거움이라는 긍정적 감정과 결합해 형성되는 복합적인 감정이다. 이러한 스릴은 남녀가 불륜 관계에 있을 때에도 자주 경험된다. 카사노바가 여러 여성을 만날 때 느끼는 감정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나 역시 젊은 시절, 두 명의 여성을 동시에 만나며 바람을 피운 경험이 있다. 오랜 기간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권태를, 다른 여성을 통해 극복하려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연인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몰래 새로운 관계를 이어가는 즐거움, 즉 스릴을 동시에 느꼈다. C 또한 형이 눈치챌 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주는 아름다운 형수로부터 강한 스릴을 느꼈을 것이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편도체 외에도 이러한 스릴에 깊이 관여하는 부위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측좌핵(Nucleus Accumbens)이다. 측좌핵은 중독을 유발하는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도파민은 뇌간의 배쪽피개영역(VTA)에서 생성되어 측좌핵을 자극한 뒤, 전전두엽(PFC)으로 전달된다.


흥미롭게도 도파민 분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측좌핵은 편도체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다. 측좌핵이 보상과 쾌감에 관여하고, 편도체가 감정에 관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스릴이라는 감정은 두 영역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감정적 보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측좌핵은 카사노바적 행동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뇌 부위다.


이처럼 편도체와 측좌핵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스릴은 불안과 기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강렬한 복합 감정이다. 개인적으로 스릴만큼 인간에게 강한 쾌감을 주는 자극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공포나 액션 장르의 영화가 꾸준히 흥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비도덕적임을 알면서도 불륜을 저지르는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측좌핵은 아니마와 아니무스, 그리고 그림자가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그림자가 창조성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승화(昇華)의 개념과도 유사하다. 즉, 그림자 속에 숨겨진 어두운 욕망을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형태로 전환해 표현하는 것이다(시련의 아픔을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위대한 작품으로 승화시킨 니체가 대표적인 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 바로 도파민이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면 보상회로가 활성화되고, 특정 활동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그 결과, 높은 수준의 창조성이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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