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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May 12. 2023

독립적인 아이로 기르기 위해 부모가 할 일

내 삶은 내 몫이고, 네 삶은 네 몫이다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나요.”

“부모님들 자신이 잘 살아가야 합니다.”

 - 거창고등학교 전성은 전(前) 교장




▪아이와 분리되지 못한 부모의 불안

아이의 몸이 허약해 산을 오르지 못할 것 같으니 학교 여행 일정을 수정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평소 축구부 활동을 하며 잘만 뛰어노는 아이였다. 여행을 기대하며 한껏 들떠있는 아이와 다르게 부모는 걱정이 가득했다. 많지는 않지만 이보다 더 극단적으로 불안이 높은 부모들도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보내고 있는 아이와 달리, 부모는 눈앞에 보이지 않는 아이가 늘 불안한 것이다. 아침에 야단을 쳐서 학교를 보낸 바람에 아이가 안 좋은 기분으로 지낼까 봐, 준비물을 챙기지 못한 아이가 당황하고 주눅 들어 있을까 봐, 몸살을 앓고 난 뒤라 기운이 없을까 봐 걱정한다.    


아이의 자립이 늦어지는 이유는 많겠지만, 그중 하나로 부모가 오히려 아이와 분리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불안이라는 감정이 있다. 아이는 점차 부모와 분리되고 스스로 자기 일상을 꾸리며 궁극적으로는 독립해야 할 존재이다. 그러나 자녀들이 자아가 형성되는 청소년기에 이르도록 부모와 분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종종 본다. 아이가 겪는 상황을 부모 자신이 겪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아이의 감정을 고스란히 대신하기도 한다. 혹은 당사자인 자녀보다 더 큰 두려움과 불안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도 많다. 부모의 애정과 헌신을 강조하는 우리 문화에서 그 모습이 때로는 아름답게 포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의 불안과 강박이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교육자와 철학자들이 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영국 서머힐 학교의 설립자 닐(A.S. Neil)은 부모의 불안이 어린이들에게 옮겨지는 것을 염려했다. 서머힐 학교에 딸을 보내고 계속 편지를 쓰며 걱정하는 부모가 있었다고 한다. 편지에 딸이 먹어도 되는 음식과 안 되는 음식을 나열하고, 어떤 옷을 입혀야 하는지 등을 계속 알렸다. 닐은 불안에 빠진 부모가 자녀를 ‘문제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고 꼬집었다. 관심과 애정이라고 하지만, 실은 부모가 나서서 자기 자녀를 부족하고 결점이 있는 아이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이 옮겨져 자녀들을 우울증 환자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있다며 걱정했다.1) 백 년 전 설립된 학교에서 겪은 일이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건 아니다.


여기에 ‘우리 애는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생각이 더해지면 이야기가 쉽지 않다. 운동장에서 지치지 않고 뛰는 아이를 허약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우리는 원래 타인을 잘 모른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어쩌면 이 생각이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겪어내고 감당하는 것은 자녀인데 부모가 마치 당사자인 것처럼 판단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아이의 경험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해 버리고, 때로는 아이의 감정마저 단정 짓는다. 친구들과의 관계나 학업, 진로마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여긴다. 이런 경우는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도 가지고 있어서 설득도 쉽지 않다.  



▪ 부모 독립

거창고등학교 전성은 전(前) 교장은 부모들이 어떻게 하면 자식을 잘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면 종종 비슷한 답변을 했다고 한다. “부모님들 자신이 잘 살아가야 합니다.” 그는 삶이 자식을 잘 키워내는 것에 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기 삶은 자신이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삶은 부모의 몫이고, 자식의 삶은 자식 몫이다. 그는 부모가 자기 삶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자식 삶을 걱정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하였다. 알 수 없는 타인의 삶을 위해 무엇을 할지 걱정하는 것.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모르는 데서 나오는 말’이라고 하였다.2) 


자녀보다 부모의 독립을 먼저 말해야 할 때가 있다. 아이가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 이상으로 부모가 아이에게 매달려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나이와 상관없이 이들에게는 자녀와 관련된 일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나하나 다 챙기고 신경 쓰면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한다. 사회학자 아네트 라로는 미국 중산층 부모가 자녀 양육을 마치 일종의 ‘프로젝트’로 보는 현상을 꼬집는다. 아이의 발달 과정, 경험 등을 세밀하게 관리 감독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 아이처럼』의 파멜라 드러커맨은 미국과 프랑스의 육아 문화를 비교하며, 이와 같이 ‘아이에 대한 개입’이 높은 미국 문화를 비판한다. 프랑스에서는 ‘엄마가 종일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은 그다지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나친 관심과 걱정으로 아이를 짓누를까 염려한다. 또한 엄마와 아이의 욕망이 뒤얽혀 부정적인 결과를 만든다고 믿는다. 엄마가 가진 삶의 목표가 아이 하나라면, 아이 숨이 막힐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3) 


철학자 버트런트 러셀(Bertrand Russell)은 이런 양육방식을 보이는 이들에게 묻는다. 자녀의 의존을 통해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있지 않는가. 아이가 곁에 붙어서 의존할 때 부모로서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4) 앞서 언급한 서머힐 학교의 닐은 이런 부모들을 향해 ‘자식의 성장을 원치 않는 엄마’라는 말까지 쓰며 날카롭게 비판했다.5) 아이를 붙들고 있는 자신의 욕구는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독립적인 아이로 기르기 위해 부모가 할 일은 무엇일까. 부모가 먼저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모가 잘 가꾸어야 할 것은 바로 자기 삶이다. 부모 스스로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틀 밖에서 놀게 하라』에서 김경희 교수도 부모가 자신에게 투자하며 스스로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하였다.6) 이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어떤 값비싼 강의보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더 큰 교육이 되는 것이다. 부모가 먼저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자기만의 생기 있는 삶을 사는 것이 훨씬 더 교육적이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키스 로빈슨과 듀크 대학교 에인절 L. 헤리스는 더 강렬한 부모 역할을 말한다.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대를 마련하고 떠나면 된다.” 7) 자녀 스스로 용기 내 길을 찾아가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위한다며 끊임없이 끼어드는 것은 불안을 낳는다. 부모는 자기 삶을 살아가면 된다. 이는 아이들을 내팽개치라는 것과는 다르다. 아이들이 부모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부모의 삶을 지원하는 사회

지금까지 부모의 독립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의 자립만큼 부모의 자립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어린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종일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한국 부모를 생각하면 먼 이야기이다. 출산과 함께 경력은 단절되고, 자녀 양육과 교육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애써야 하는 현실. 삶의 중심에 자녀가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부모와 자녀를 서로 의존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 아이의 자립은 기쁨이 되기 이전에 부모의 위치를 공허하게 만든다. 역할과 일거리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아이가 자란 후 돌아갈 곳이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자녀의 독립도 어렵지만 그전에 부모의 독립이 더 어렵다. 사회적 제도나 프로그램이 부족한 상황에서 부모들은 자기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육아와 자녀교육은 무겁기 그지없다. 자녀를 키우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높은 교육열에 부모가 느끼는 책임감과 죄책감도 크다. 부모의 재력과 정보가 미치는 영향이 큰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바탕이 먼저 마련되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자립도 부모의 삶도 보장되기 어렵다. 그것이 교육제도나 교육과정을 바꾸기 이전에 고민해야 할 것들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엄마들에게 가장 좋은 나라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복지제도가 탄탄한 북유럽 국가들이 순위에 들었다. 북유럽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출산과 육아를 위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긴 휴가를 보장한다. 직장에서는 출산이나 육아로 부당하게 해고되지 않는다. 자녀를 키운 뒤 다시 안정적으로 직장에 복귀한다. 자녀교육에 부모의 재력이 영향을 주지 않고 누구나 평등한 교육을 받는다. 학비는 무료이므로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 한 사람이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돕는다는 점이다. 가족들이 서로 의존할 필요가 없으므로 부모도 자기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부모가 된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잘 보살피고 있을까.


부모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다. 부모와 자식이 온전한 개인으로 만날 때 교육의 의미도 살아난다. 따라서 자녀를 기르고 교육하는 일에 한 사람의 일상을 바쳐야 한다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희생과 헌신이라는 말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자녀와 분리되지 못한 부모의 불안은 부정적인 영향을 남길뿐이다.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내려놓은 가볍고 편안한 관계가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가 즐겁게 서로의 꿈을 응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모두의 삶이 존중되는 방향이 될 때 아이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 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화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  




학부모 면담에서 자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꿈 이야기를 내놓는 엄마를 만난 적이 있다.

오랫동안 관심 있었던 일을 시작하기 위해 작은 음식점부터 시도해 보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 딸은 자기 인생 잘 찾아갈 테니, 저는 제 꿈을 향해 나아갈게요."


왠지 모르게 뭉클했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부모에게도 중요하다.




※참고문헌

1)『서머힐』. 알렉산더 닐. 산수야. 2014. p.401

2)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강현정, 전성은. 메디치미디어. 2015. p.8

3)『프랑스 아이처럼』. 파멜라 드러커맨. 북하이브. 2014. p.179, p.186

4)『행복의 정복』. 버트런트 러셀. 사회평론. 2005. p.218

5)『서머힐』. 알렉산더 닐. 산수야. 2014.  p.378

6)『틀 밖에서 놀게 하라』. 김경희. 쌤앤파커스. p.128

7)『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아누 파르타넨. 원더박스. 2017.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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