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기술적 위협인가. 지위의 박탈인가.
인간종은 먼 과거부터 혹독한 환경 속에 생존 압박을 받아왔다. 여타 동물들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존에 유리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했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생존 압박을 집단을 형성하는 것으로 해결해 나갔다. 오래 달리고 던지기를 잘하는(손을 잘 쓰는) 종이 살아남을 수 있는 탁월한 방법은 무리를 이루는 행위일 것이다. 그렇게 구성된 집단은 유지·확장함으로써 더욱 강한 생존 환경을 확보해 나갔고, 스스로 개척한 생존 환경 속에서 인간은 인성, 도덕성, 친화력과 같은 형태의 통제력을 손에 넣었다. 이는 집단에 포함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들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1,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종교적 관점에서의 도덕과 신화적 믿음은 희미해지기 시작했으며, 인간들은 그 빈자리에 자본을 굳게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종교적 율법으로, 혹은 국왕의 형법으로 집단을 통제해 왔다. 때에 따라서 그것들은 강도를 조절해 나갈 수도 있었다. 완전히 인간에 의해 제어되는 통제였다. 하지만 자본이 사회에 자리 잡으며, 앞서 언급했듯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재인 인성, 도덕성, 친화력—편하게 '인간다움'이라고 하겠다—을 통한 통제가 작동하지 않았고, 되려 자본 사회는 인간에게 자본에 의한 생존 압박을 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압박은 이미 인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한 통제에 의한 생존 압박은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통제권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게 한다. 과거에도 계층에서 나오는 권한과 지위에서 나오는 권력에 대다수의 사람은 강한 선망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태생적 신분의 한계나 종교적 율법에 의한 한계로 인해 단념할 뿐이었다.
허나 지금은 어떠한가? 자본 사회에서 자본의 축적이 곧 권력이다. 자본의 파생품인 물질만능주의와 능력주의는 시민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해서 더 높은 지위에 올라 더 많은 권한으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아름다운 꿈을 꾸게 만들어주었다. 자본이 만들어낸 허상에 가까운 논리는 시간이 흐르며 시대정신으로 변질되었고, 인간은 자본 사회로부터 받는 생존 압박을 해결하기 위해 지위를 갈망하는 정서적 편향성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러한 편향과 자본에 의한 논리는 정치 체계에도 스며들었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극단적인 포퓰리즘으로 그 꽃봉오리를 활짝 피웠다. 자본의 폐해로 인해 인간 사회가 극단으로 치닫는 와중에 우리는 AI 산업의 발달이라는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했다. AI는 우리의 호기심이었다가, 손에 잡힐 듯한 희망이었다가, 폭발적인 경제 성장의 도구가 되었다. 허나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AI에 대한 통제권이 과연 인간에게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누군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AI의 안전성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이는 그 답변들에 '명확한 증거 부족'이라는 반문을 던진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 같지만, 최근 AI의 활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취업 환경의 변화를 짚어볼까 한다. AI 시대가 가속화되며 기존의 위계질서를 가지던 조직들이 점차 해체되고 있다. 실제로 폐업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고 그 조직들의 '위계질서'가 해체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 위계질서라는 것은 결국 처음 언급했던, 인간이 조직을 이루기 위해 필요로 하는 '인간다움'을 연료로 태우는 시스템이다. 인간다움이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조직 내에서 인간을 고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위계질서의 비용보다, 인간을 AI로 대체하고 위계질서 비용을 줄이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결론이 도출된 듯 보인다.
20대 초반, 왕성히 경제 활동에 뛰어들어야 할 젊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안달이다. 모두의 바람에 따라 학업에 정진하며 좋은 대학을 나왔어도 이제는 졸업장이 내가 이 조직에 포함되기에 알맞은 훌륭한 인재라는 사실을 대변해주지 못한다. 신규 채용은 줄어들고 소수의 경력직이 AI를 활용하여 더 높은 업무 효율을 뽑아내 주길 기대한다. 더 이상 '인간다움'은 인재의 요소가 아니며, 어떤 요소든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재능 있는 자들만 현대 경제 사회에 편입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결국 인본주의를 필두로 한 인간 사회는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인간다움이 가져다주던 집단의 안전성을 AI 프로세스가 대체하게 되었고, 그런 프로세스에서 높은 효율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주체적인 삶이 아닌 프로그램이 정한 지향점만을 바라보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프로세스도 유지되기 위해선 인간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 말로는 인본주의를 벗어나 자원효율주의로의 진입이 인간의 지위를 도구로 격하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사회는 인간이 만들었으나 인간이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사회 속에서 인간은 결국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사회 집단에 친화적인 '종'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사회 친화적인 '인간종'이 된다 한들, AI의 발전으로 인해 생활환경이 개선된다면 그것이 결코 나쁜 미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되는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무엇이 좋은가에 대한 답은 낼 수 없지만, 우리가 왜 이런 미래를 두려워하는지는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듯 보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자본 사회로부터의 생존 압박으로 '지위에 대한 갈망'이라는 정서적 편향성을 얻은 바 있다. 생존 압박이 강력했던 만큼 그로 인한 반작용으로 지위에 대한 갈망적 욕구는 더욱 단단해졌다. 결국 인간은 이미 지위에 집착할 수밖에 없도록 진화했고, AI로부터 인간 중심적 통제권을 가진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극도로 불안한 감정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미 편향된 정서를 하루아침에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저 개인이 스스로 고찰하고 고뇌하며 그 외의 의미를 되짚어야 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