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으로의 발돋움인가, 존엄의 끝없는 추락인가.
(이 글은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음.)
정치적 분열과 환경 문제, 국제 외교와 금융권의 과도한 성장, 이념 갈등 등으로 전 세계는 점차 피폐해지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를 안고 살지 않은 적이 없는 인류이겠으나, 지금은 그 두께가 한층 더 두껍다 말하겠다.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갈등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통일된 도덕관념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국가 운영 체제에서 나오는 안정감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무엇으로 어떻게 통일시킬 것인지는 모두의 머릿속에 물음표로 남아 있다.
과연 저 수많은 갈등을 잠재울 완벽한 하나의 이론이, 도덕관념이, 정의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만약 그것이 있다면 우리의 시민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우리는 두 가지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할 것이다. 나 또한 "예"라고 답하기엔 헤쳐 나가야 할 비판과 질문들이 무수히 많다. 다만 이 지구의 어딘가엔 분명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보편적인 시민이 가지지 못하는 최상위 지위를 가진 이들은 더욱 그런 듯 보인다. 미국의 최고 수장인 도널드 트럼프부터 팔란티어의 CEO, 테슬라와 스페이스 X의 창립자, 공산 체제의 거대한 주축인 중국의 시진핑과 러시아의 푸틴까지. 대체로 누군가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치에 자리한 이들이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그런 자리에 있기에 보다 명확하고 뚜렷한 세계관과 통찰을 담고 내비쳐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허나 내가 예시로 든 대부분의 인물은 그 원대한 속마음을 쉽게 내비치지 않는다. 특히 국가의 원수 위치에 있는 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필요에 따라 근시적 시각과 목표를 부각해 시민들을 흥분시키고, 장기 집권을 위한 발판을 만드는 데에 더욱 총력을 기울이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할 주인공은 조금은 결이 다르다. 항상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있으며, 가장 먼 곳에 있는 이상과 우상을 향해 한 치의 거짓 없이 끊임없는 구애의 몸짓을 대중에게 선보인다. 적어도 나는 그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일론 머스크에 대한 이야기다.
일론 머스크는 다양한 회사를 소유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대중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스페이스 X를 통해 미국의 NASA와 협력하여 인류의 우주로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일론의 가장 큰 목표가 인류의 화성으로의 이주라고 밝힌 바 있듯이 이 사업에 있어서는 사활을 걸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조직보다 우주 발사체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기술력을 보유했으며, 그동안의 노력의 성취로 얻은 지구를 둘러싼 수천 개의 스타링크 위성은 일론에게 범지구적 통신 사업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실제로 이 사업이 흑자로 전환했는지, 얼마나 효율적인 사업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시대에 분명한 효용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어느 오지이건 관계없이 그의 의지만 있다면 손짓 한 번으로 인터넷 망을 연결할 수 있다. 기존의 통신 사업자는 꿈도 못 꿀 상황이다. 전주를 세워서 케이블을 잇고, 기지국을 세워서 사람을 배치하는 등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원이 소모되는가. 이를 이용해 실제 통신이 마비되는 극한의 환경에서 그 위용을 뽐내기도 했다. 전쟁이다.
그의 또 다른 사업인 친환경 사업, 전기차 테슬라다. 그동안 모은 돈을 끌어모아 아낌없이 투입해 만들었다는 전기차다.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게 될 지구를 생각하며, 화성으로 이주할 때 사용할 수 없는 내연기관을 생각하며 구상한 인류 이주 프로젝트의 일환일까?
그는 어떤 밑천도 없이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수많은 이들의 만류와 비난에도, 실용적인 배터리 생산 문제와 부족한 충전 인프라, 불확실한 사업 전망에도 굴하지 않으며 결국 세계에서 선두를 달리는 전기차 사업체가 되었다. 완전 자율주행이라는 혁신적인 초인류 기술을 탑재하겠다는 야망은 곧 현실에 실현될 예정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가 과학의 날 그림 그리기에서나 그리던, 초등학생 머릿속에 존재하는 초고도 문명의 결정체이지 않은가.
자율주행 자동차의 전면에는 AI 산업이 있다. 현재 수많은 기업이 AI 산업의 끄트머리라도 잡으려 발버둥 치는 가운데 오픈 AI와 구글의 뒤를 바짝 추격하는 선발대에 또다시 일론 머스크가 있다. 그 외에도 인간형 로봇부터 장난 삼아 사봤다는 SNS 사업체까지. 말 그대로 미친 듯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업이 순항 중이라는 부분일까 싶다.
이렇게 수많은 사업체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뉴럴링크'였다.
인간의 머릿속에 칩을 박는다. 그 칩은 우리 뇌에 직접 정보를 주입한다. 칩을 박은 인간은 생각만으로 내 주변 맛집 정보를 탐색할 수 있다. 그뿐이겠는가? 그 식당을 가는 길부터 어떤 메뉴가 가장 잘 팔리는지, 이번 주말에 몇 명이나 방문하여 후기 글을 썼는지까지 모두 알 수 있다. 단 몇 초 안에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공상과학에 빠진 성공한 사업가의 즐거운 유희 거리이지 않을까 싶었다. 허나 지금껏 우리가 이야기한 모든 사업체를 연결해 보면 이 인물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된다.
지구 환경 문제를 해결할 친환경 자동차 산업과 인류의 화성 이주를 위한 우주 발사체 산업, 전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통신 사업과 인간의 통제가 필요 없는 완벽한 자율주행 수준의 AI, 인간형 로봇과 인간을 인터넷과 직접 연결해 줄 바이오칩까지.
우리는 글의 서문에서 인류의 소망이 있다면 모든 갈등을 잠재울 통일된, 이상적 운영 체제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일론 머스크의 사업체들을 보고 있자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정치 문제, 국제 외교 문제, 환경 문제를 한순간에 해결하고 이러한 갈등으로 저해되던 인류 문명의 발전 속도에 한층 가속도를 붙여 줄 것 같지 않은가? 더 나아가 인류를 더 이상 지구에 속박된 생명체가 아닌 우주로 나아가는 확장된 인류로 만들기 위한 원대한 계획이 보이지 않는가?
일론 머스크의 화성 이주라는 원대한 계획을 실행하려면 대중들의 열렬한 응원과 기대가 필요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화성을 테라포밍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일, 또 그것들을 실제로 실행하는 일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모된다. 그런 자금은 개인이나 개인이 소유한 사업체가 감당할 수 없다. 범지구적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다.
하지만 지금의 지구는 국가별로 나뉘어 이념과 패권을 가지고 끝없는 줄다리기 중이다. 이들을 설득할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이 부분을 극단적으로 상상해 본다면 인류를 세뇌시키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사정과 입장 차이가 명확한 여러 집단을 하나로 묶어 내기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일론 머스크에게는 뉴럴링크가 있다. 전 세계에 흩뿌려진 뉴럴링크에 신호를 보내 줄, 실질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스타링크가 있다. 스타링크의 조작에 따라 칩과 뇌의 상호 작용 속에서 원하는 정보를 생성 또는 분별해 낼 xAI(Grok)가 있다. 이제 지구에서의 인류 발전을 저해시키는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체제를 완성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제 우주로 나아가면 된다. 화성에 도착해 인간이 할 수 없는 작업인 테라포밍은 어떻게 하는가.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각종 형태의 기계들이 수천 번의 우주 비행 노하우를 담은 스페이스 X의 우주선을 타고 날아간다. 그 기계들은 우주에서 활용 불가능한 내연기관을 사용하지 않는다. 배터리로 움직이니까. 심지어 천연 핵 원자로인 태양열을 이용한다.
일론 머스크는 늘 말해 왔다. 인류를 화성으로 보내겠다고. 그의 다짐이 하나씩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그의 바람에 필요한 요소를 하나씩 채워 나가는 중인 것이다. 이제 인간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지구에 남을 것인가, 화성으로 나갈 것인가.
이 두 가지의 차이가 어떤 다른 결말을 가져다줄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의 이런 멋진 시나리오대로라면 일론 머스크는 초인류적 기술로 인류를 불필요한 작업과 비효율적인 인식 갈등으로부터 완전히 해방해 준다.
마치 우리 인류가 인간 지성의 힘을 믿고 그에 따라 세상을 논리로써 설명하려 했던 시대처럼, 인간 지성이라는 인간의 오만에서 벗어나 따뜻한 인류애를 믿으며 인간다움을 설파했던 시대처럼, 휴머니즘은 또다시 변화하고 있다.
과학 기술을 통해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한계를 초월하려는 시도를 트랜스휴머니즘이라고 더러 부른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이 단계를 단시간 내에 돌파하고 인간 사회와 문명의 도약을 꿈꾸는 하이퍼휴머니즘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마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 속 프로토스 종족이 '칼라'라는 신경망을 가지고 종족의 모든 개체와 정신이 연결되어 있는 형태와도 같다. 이런 개념은 현대 영화인 〈아바타〉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앞서 국가 지도자들은 일론 머스크와는 결이 다르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들은 정권의 유지를 통한 세력의 유지, 다시 말해 갈등이 주는 긴장감을 이용해 국가급 권력을 지속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는 다르다. 국가를 넘어 인류 문명을 유지 또는 확장하려는 야망이 있는 자이다. 일론 머스크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시민들의 환호와 열기, 경제 체제의 비합리적 성장마저 이용하는 자이다. 누구보다 스스로의 비전에 투명하며, 누구보다 열광적인 인간인 셈이다.
하지만 그가 그리는 이 사회에서도 일말의 두려움은 있다. 인류가 지구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이다. 칩으로 연결된 거대한 하나가 필요에 따라 남을 자들과 떠날 자들을 분별해 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초인류의 새로운 문명 체제에 순응한 인간들은 이 선택에 어떠한 반기도 들지 않는다. 머리에 주입된 정보가 명백하게 합리적이라고 입력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술에 의해 분류되고 공통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이 마땅히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머스크가 제시하는 미래는 거부하기 어려울 만큼 매혹적이다. 피지컬 AI와 자동화된 기계들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환경 붕괴로 한계에 다다른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향하는 서사는 문명사적 도약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전제가 필요하다. 인류 내부에 존재하는 정치적, 이념적 갈등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 해결 방식이다. 집단 간 갈등은 물리적 장벽이 아니라 신념과 가치라는 형이상학적 차원에서 발생한다. 그렇기에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은 물리적 통제보다 의식의 재편, 혹은 통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기술은 위험한 윤리적 영역으로 진입한다. 인간의 판단과 욕망이 외부 체계에 의해 조율되기 시작하는 순간, 그 체계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소수의 결정권자는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권력을 얻게 된다.
역사는 언제나 이상을 명분으로 한 통제가 어떻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기술이 제공하는 손쉬운 해결책은 오히려 가장 감시받아야 할 대상이 된다. 인류를 구원한다는 서사와 인간을 재편하는 권력이 동시에 등장할 때, 우리는 그 계획을 무비판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인간다움을 논하던 휴머니즘에서 한층 더 나아간, 인간을 초월한 하이퍼휴머니즘으로. 인류 문명을 우주로 한 걸음 내딛겠다는 그의 의지는 진정 인류를 낙원으로 이끄는 손길이 맞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