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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의 동일함’이라는
관계론

2021 역사교육 여름호 133호_편집자의 글


종수:전 아직 무슨 소설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한텐 세상이 수수께끼 같아요
혜미: 죽는 건 너무 무섭구… (중략) … 그냥 아예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의 대사가 귀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원작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納屋を焼く)>를 리메이크한 영화입니다. 감독인 이창동은 원작에는 40대였던 주인공 대신 한국 사회의 20대 청년들을 카메라 앞으로 불러내며 영화를 재창작하였습니다. 스스로 젊은이가 아니면서도 이 시대의 청년들을 영화에 담으려고 했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젊은이들에 대한 애정, 있는 그대로 살피려는 거리두기를 통해 그 위험에서 벗어납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청춘(靑春)이 적용될만큼 아름다운 인생을 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난 청춘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이창동 감독의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버닝>에서는 청년들의 분노를 걱정하며 있는 그대로 그들을 바라보려는 아저씨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10년 전에도 20대 이야기는 끊임없었습니다. ‘반값 등록금, 청춘 콘서트, 청년 멘토, 88만원 세대’ 등의 키워드들이 떠오릅니다. 대선을 앞둔 지금도 여김 없습니다. 하지만 양상은 조금 다른 듯합니다. 그 양상과 세태를 마음 편히 바라보고 계실 역사 선생님들이 계실까요.


‘20대 보수화’든 ‘20대 남자 현상’이든 분명 그것은 일종의 세대론이 아닐까 합니다. 함부로 ‘세대’로 묶는 것도, 그것을 ‘론’으로 풀어내는 것도 본질은 ‘대상화’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대상화는 경계해야 할 사고방식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갈 수 있는 일말의 ‘현상’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현상에 대해 살피려 노력하고 상대를 헤아리려는 긴장, 그것이 곧 삶에 대한 겸허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너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수업을 통해 되물어야 하는 게 역사 교사들의 일이라면, ‘나 스스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역사 교사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회보 <역사교육>은 그러한 숙제들과 함께 호흡하며 앞으로도 역사 선생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1. 역사 수업과 실천들, 여전히 전방위를 향하다


구성만 놓고 보자면, 이번 2021 여름호의 ‘수업이야기’ 만큼 다양한 접근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연재 코너 <초협력교실>에서는 양홍석(전남 여수고) 선생님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연구자 정혜경 선생님의 콜라보가 이어집니다. 베트남에서 아이들과 함께하시는 김선옥(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선생님은 베트남 전쟁을 가르치려는 역사 교사들에게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베트남 현지에서의 생생한 이야기도 함께 말이죠. 박중현(前 서울 영등포여고) 선생님께서는 일본의 학습지도요령 개정을 통해 신설된 <역사총합> 과목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우리도 <통합 역사>에 대한 논의와 구상이 종종 나오곤 한다는 점에서 일독할만한 글입니다. 


올해는 2015 개정교육과정(2018 부분개정)가 역사과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해이지요. ‘고민보다GO’에 글을 담아주신 박해경(경남 마산해운중) 선생님은 새 개정 교육과정을 가르치며 느끼는 어려움을 솔직하게 전해주셨습니다. 그 어려움에는 세계사로 통권을 이루는 중2 ‘역사’의 문제도 포함이 됩니다. 이에 회보 <역사교육>은 올해 세계사 수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와 수업사례 소개를 다짐하였습니다. 편집부 에디터이신 이재호 (서울 개운중) 선생님의 글을 그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일독해주세요.


#2. ‘코로나라서’가 아닌 ‘코로나지만’으로


작년 이맘때 2020년 <역사교육> 여름호에서는 코로나19 특집 3부작의 시작을 열었었지요. 1년이 지난 지금, 더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은 왜일까요. 하지만 회보 <역사교육>은 코로나19라는 상황임에도 분투한 모임과 교사들의 기록을 담아냈습니다. ‘사는 이야기’에서는 전역모에서 비대면 플랫폼을 통해 활발히 펼쳐간 여러 행사와 연수의 기록들을 담고자 했거든요. 새 집행부 출범 이후 매달 1회 이상의 행사와 사업이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겁니다. <미얀마 특강>(오도화 선생님), <기억의 전쟁 영화 상영과 GV>(원지혜 선생님), <초보교사 연수> 후기까지. 생생한 그 날의 기록과도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장콩 샘(장용준 선생님)’의 인터뷰 마이크는 김애경(경기 인창고) 선생님을 향했습니다. 글의 행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애경샘의 에너지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번 호로 34회를 맞은 한민혁 선생님의 만화도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독자 선생님들이 사랑해주시는 안민영 선생님의 ‘소소한 미술사’ 연재는 사정 상 이번 호는 쉬게 되었습니다. 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코로나지만’ 새 교육과정에 대한 프로세스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우리 모임은 역사교육연구소와 더불어 새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를 이어오면서 현장의 총의를 조직하는데 애를 써왔었습니다. 2차 사전연구가 진행되고 총론이 발표되기 임박한 시기였던 7월, 모임은 2022 역사과 교육과정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그 토론회의 후기를 장수민(경기 상현고) 선생님께서 남겨주셨으니 지면으로나마 활발한 현장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토론회에서 발표된 글 중에서는 황현정 선생님의 원고를 대표로 담아봤습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리서치 형태로 분석 하여 선택과목 개설에 대한 논의와 제언을 정리한 멋진 글이기 때문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3. 쉬이 이해하는 척하지 않는 ‘입장의 동일함’을 위해


J는 제가 올해 학교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눈 학생입니다. 올해 J와의 대화에서 큰 위로와 배움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스스로 자세를 고쳐 앉게 되는 긴장감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저 역시 기성 세대(전문용어로는 ‘아저씨’)가 되었음을 인식하게 될 때는 제 말과 행동을 주워 담고 싶고만 싶습니다. 서글프지만 그 덕에 스스로 삼가고 경계하게 됩니다.


‘Wave to Earth’라는 인디 밴드가 있습니다. J가 ‘최애’로 여기는 아티스트입니다. 예전에 몇 번 곡을 들어봤고 알고는 있었던 밴드라서 어설프게 아는 체를 좀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민망할 수 없었습니다. 성의를 다하지 않은 알량한 친밀함, 기성화라는 안일함을 저의 태도에서 읽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는 본능적으로 이런 태도를 눈치채기 마련이지요. ‘이해하는 척’하는 것의 폐해를 깨닫게 됩니다. 되돌아보니 J와의 관계에 임하는 제 태도가 늘 그러했습니다.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이다.” 신영복 선생님이 괜히 이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니었네요. 앞서 말씀드린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좋았던 것도 이 ‘입장의 동일함’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겠죠. 회보 <역사교육> 여름호와 독자 선생님들의 관계도 그런 형태였으면 합니다.



Before the day I leave this town,

I'm gonna burn all my places

Throw away all my memories here, 

Then I'll go away     

'I'll never get lost'

'I'm sure there's a lot of fun out there.'


/ Wave to Earth, <Pueblo>(2020)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Q3O40_SEoco




뱀말 : 이번 회보 편집을 마지막으로 편집부장에서 물러납니다. 지난해 겨울호가 끝이어야 했는데 여의치 않아 모임에도 독자 여러분들께도 늘 송구했습니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잘한 일이라면 새 편집부장으로 고진아(경기 향동고) 선생님을 모셨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더 날아오를 회보 <역사교육>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2019~2021 편집부장 문순창 드림


https://brunch.co.kr/brunchbook/hisedu-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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