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 미얀마 특강 후기
>>오도화(경남 태봉고)
지난 2월, 뉴스 보도를 통해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미얀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군부독재, 아웅산 수치, 로힝야 학살... 서로 연결되지 못한 단편적인 지식들을 아주 얕게 알고 있는 정도였고, 태국처럼 그저 그 지역의 군부 세력이 강하니까 의례히 일어나는 권력투쟁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후 이어지는 보도는 그저 동남아에서 일어난 권력투쟁이라고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불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쿠데타에 저항하는 모습과 민중들을 향해 무자비한 탄압을 일삼는 군부의 모습은 우리나라가 겪었던 상황과 너무나 비슷해서 남의 나라 이야기라며 뉴스 채널을 돌리기가 어려웠다. 특히 자신의 페이스북에 혈액형, 비상 연락처와 함께 '시신을 기증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시위에 참여해 죽임을 당한 19살 ‘치알 신’의 죽음은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고, 미얀마의 상황이 더욱 궁금해졌다.
“도대체 미얀마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 속에서 미얀마의 군부는 어떻게 계속 자국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할 수 있는 걸까?”
“미얀마 민중들의 저항 동력은 무엇일까?”
그럴 때 전역모에서 미얀마 현대사에 대해 온라인 특강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역시 역사 교사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전역모.(^^) 3월이고 집행부도 바뀌어서 많이 바쁜 시기일텐데 이렇게 신속하게 특강을 만들어주는 집행부 선생님이 참 고맙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코로나로 인해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면 이렇게 온라인 특강이 개설되어 나와 같은 지방 사람들이 시공간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특강을 신청하였다.
특강 시작 시간인 저녁 7시가 조금 넘어서 줌에 접속을 했는데 접수자 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극한의 업무와 피로로 퇴근 후에는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시기인 3월 중순, 그것도 월요일 저녁이라는 취약시간에 하는 온라인 특강인데 200여 명의 선생님들이 접속해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올해 학습 연구년이라 아무런 피로감 없이 편한 마음으로 참여하였지만...) 선생님들의 관심과 열정에 탄복하면서 강의를 듣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 강의를 맡은 홍문숙 교수님은 미얀마 현지에서 오랜 시간 공부를 하셨던 분이기에 미얀마의 현재 상황을 대해 더욱 생생하게 전달해 주셨다. 그리고 이어진 미얀마 현대사 강의는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울 정도로 좋은 배움이 되었다. 쿠데타 이후로 미얀마에 관심이 생겨서 그동안의 무지를 반성하며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번 강의를 통해 미얀마의 현대사가 조금은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영국에 의한 오랜 기간의 식민지배와 일본의 짧은 지배, 그 과정에서 아웅산 수치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을 중심으로한 독립운동, 그리고 해방 후 국가 수립 과정에서 아웅산 장군의 암살, 군부 쿠데타와 버마식 사회주의라고 불린 군부 독재, 1988년의 8888항쟁 이후 민주화 세력으로 성장한 아웅산 수치와 NLD, 민중들의 지속적인 저항으로 이루어낸 민간 정부와 2015년 총선에서 압승한 NLD 정부의 출범까지... 부끄럽지만 그동안 전혀 몰랐던 미얀마의 현대사를 1시간가량 훑어보면서 우리와 비슷하지만 훨씬 긴 저항과 탄압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미얀마 민중들의 모습에 깊은 공감과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쿠데타의 이유도 알게 되었다. 현재 미얀마 헌법에는 군부가 상·하 의원 25%를 지명할 수 있는데(유신헌법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집권 세력인 NLD에 의해 군부의 권한을 축소시키기 위한 헌법 개정의 움직임이 있었다. 헌법 개정은 군부의 반대로 좌절되었지만, 2020년 총선에서 NLD가 2015년 보다 더 큰 압승을 거두게 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즉,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군부의 권력이 너무 막강해서 대다수 민중의 지지를 받는 민주 정부가 있다 하더라도 위태로운 권력일 수밖에 없는 미얀마의 정치 상황이 근본 원인이었던 것이다.
질의응답까지 하다 보니 정해진 시간을 넘겨 강의가 끝났는데 그만큼 시간의 부족함이 아쉬운 강의였다. 안타까운 것은 전문가인 교수님께서 미얀마의 미래 상황을 낙관적으로 전망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유엔의 역할이나 국제 사회에서의 ‘정의’라는 개념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홍문숙 교수님의 강의가 지식을 채워주는 강의였다면 활동가 두 분의 강의는 감성을 폭발시키는 강의였다. 미얀마의 현 상황을 보여 주는 동영상으로 강의를 시작했는데 영상이 끝난 후에도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잘 이어가지 못하는 헤이만 선생님의 모습과 사회를 맡은 조정아 선생님의 목이 멘 목소리와 화면 속에 보이는 선생님들의 먹먹한 표정들을 보면서 나 또한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미얀마에 가족을 두고 온 미얀마 사람이 이야기하는 미얀마의 상황은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다. 희생자들의 사진을 볼 때는 5·18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들을 보는 것 같았고, 촛불을 든 민중의 모습은 촛불 혁명 때 광화문에 나온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현지에서는 가족들과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는데 자신은 한국에 있는 것이 미안하다며 눈물 짓는 웨노에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두 분의 강의를 들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였는데 강의 마지막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소개해 준 것도 참 좋았다. 현재 한국에서 미얀마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재한미얀마청년연대라는 단체가 있고, 해외주민운동연대(KOCO)를 통해 모금활동에 동참할 수도 있고, 응원 메시지와 영상을 보내는 것도 큰 힘이 된다는 것이다. 올해 학습 연구년제를 하면서 학교로 출근하지 않아 미얀마 쿠데타에 대해 수업을 하거나 역사 동아리 아이들과 활동을 할 생각을 못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특강이 있었던 다음 날 전역모 양지나 간사님을 통해 강의를 했던 활동가들의 연락처를 받았고 바로 통화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학교에 초청해서 강의를 부탁하고 싶었지만 시간적· 공간적 제약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못했고, 미얀마의 상황과 한국에 있는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짧은 영상을 부탁했다. 그리고 역사 동아리 회장에게 전화를 해서 원격 조종(?)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동아리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줘서 학교에서 다양한 행사를 할 수 있었다.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미얀마의 상황을 공유하고 연대 활동을 제안했고(전교생 135명의 작은 학교라서 전체 등교가 가능함), 전교생이 함께 미얀마 쿠데타에 대한 저항운동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들고 사진을 찍어 공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복도에는 광주 5·18 민주화 운동과 미얀마 쿠데타를 비교한 자료를 게시하기도 했으며, 급식소 앞에서는 미얀마 바로알기 퀴즈를 내서 간식을 나눠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모금 운동도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 40만 원 정도를 모금하였다.
쿠데타가 일어난 지 2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미얀마 민중들의 희생은 현재 진행형이며 군부는 더욱 잔인하게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민중들의 용기 있는 저항은 계속되고 있고, 여전히 아무런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고 있는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전역모에서 기획한 이번 특강이 없었다면 나 또한 마음으로만 응원하고 학습 연구년을 핑계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정말 시의적절한 특강을 기획해준 전역모 집행부 샘들께 감사드리며 미얀마에 평화와 찾아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아띤타빠 미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