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늑대와 춤을>과 인디언의 사후세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남겨진 사람들은 죄책감에 시달리곤 합니다. 나만 맛있는 것을 먹어도 될까?
나만 좋은 풍경을 보고 웃어도 될까? 우리는 식음을 전폐하고 어둠 속에 가라앉는 것만이 떠난 이에 대한 예의이자 애도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영화 <늑대와 춤을>에 등장하는 수족(Sioux) 인디언들의 지혜를 빌려 본다면 우리의 생각은 달라져야 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행복하게 웃는 것이야말로 떠난 이들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애도의 방식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도입부, 남북전쟁의 포화 속에서 존 던바 중위는 심각한 다리 부상을 입습니다. 그는 다리를 절단하고 불구가 되어 사느니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겠다며, 무모하게 적진을 향해 말을 달립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은 그를 비껴갔고, 전쟁 영웅이 된 그는 아무도 없는 서부의 최전방을 자원합니다. 스스로 고립을 선택해 조용히 생을 마감하려 했던 그곳에서, 그는 역설적으로 수족 인디언들과 교감하며 진짜 삶의 생기를 되찾게 되죠. 그 치유의 과정에서 그는 그들의 독특한 생사관(生死觀)을 배웁니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영혼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옮겨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들에게 죽음은 소멸이나 영원한 이별이 아니었습니다. 육체라는 무거운 옷만 벗었을 뿐, 영혼은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머물거나 그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연결의 과정이었습니다. 이 믿음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본다면 어떨까요? 떠난 이들은 저 멀리 우주 밖으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바로 당신의 곁, 보이지 않는 공기 속에 머물며 당신과 함께 걷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 우리 곁에 있다면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느낄까요? 육체가 없는 그들은 이제 당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당신의 귀를 통해 세상을 듣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남겨진 자들의 슬픔은 다르게 해석됩니다.
당신이 매일 울고만 있다면, 당신 곁의 그들 역시 당신의 눈물로 얼룩진 흐릿한 세상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방 문을 걸어 잠그고 어둠 속에 있다면, 그들 역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히게 됩니다.
반대로 당신이 좋은 것을 보고,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따뜻한 생각을 한다면 어떨까요? 당신의 곁에 머무는 그들 또한 당신의 감각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함께 공유하게 됩니다.
그러니 남겨진 우리가 행복해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아니, 우리는 의무적으로라도 행복해지려 노력해야 합니다. 나의 기쁨이 곧 그들의 평안이 되고, 나의 아름다운 하루가 곧 그들이 머무는 천국이 되기 때문입니다.
존 던바가 늑대와 춤을 이라는 이름을 얻고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춤을 출 때, 그 자유로움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에 묻힌 수많은 조상의 영혼이 그의 춤사위를 통해 함께 기뻐했을 것입니다. 진정한 애도는 나를 망가뜨려 슬픔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세상을 보는 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하는 행위입니다.
영화의 엔딩, 존 던바는 자신 때문에 부족이 위험해질까 봐 눈물을 머금고 떠납니다. 하지만 그가 떠나는 길목, 절벽 위에서 늑대 투 삭스는 하염없이 울부짖으며 그를 배웅합니다. 몸은 멀어지지만, 그들의 영혼은 이미 서로의 일부가 되어 영원히 연결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우리와 떠난 이들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상실의 아픔은 살이 찢기는 듯 크지만, 그 아픔을 증명하기 위해 당신의 오늘을 죄책감과 어둠으로만 채우지 마십시오. 당신이 어둠 속에 웅크려 있는 한, 당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그들 또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오늘 하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세요. 따뜻한 햇살의 감촉을 피부로 느끼고, 가장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고, 좋은 사람들과 소리 내어 웃으세요. 당신이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이야말로 세상을 떠난 그들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생동감 넘치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좋은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을 건네보세요.
"이거 봐, 오늘 하늘이 참 예쁘지? 너랑 같이 보고 싶어서 나왔어."
당신이 진심으로 웃을 때, 당신의 영혼 곁에 머무는 그 사람도 비로소 환하게 웃을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