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강독 노트 vol.1, 놀부의 항변

권선징악 프레임을 넘어선 조선 후기 사회의 은유

by 사유하는 인문학도

1. 놀부의 항변: "내가 대체 뭘 그리 잘못했단 말이냐?"

청금상련의 한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여보게들, 내 말 좀 들어보게. 세상 사람들이 죄다 나를 보고 ‘천하의 못된 형놈’이라 손가락질을 하는데, 내 입장 한 번만 들어보면 그런 소리 쏙 들어갈 게야.


첫째로, 내가 부모님 재산을 독차지했다고?

아니, 이보게. 내가 이 집안의 장남이야, 장남! 우리 조선 땅법도에 장자가 가문을 책임지고 재산을 관리하는 게 어디가 잘못됐단 말인가? 제사도 모셔야 하고, 문중 어른들도 챙겨야 하는데, 그 큰 살림을 저렇게 대책 없는 동생놈한테 나눠줬다간 가문 기둥뿌리 뽑히는 건 시간문제 아니었겠나. 나는 가문을 지키려고 악착같이 재산을 지킨 것뿐이네.


둘째로, 흥부 그놈을 내쫓은 게 비정하다고?

자네들이 흥부 형편을 좀 봐주게나. 애는 줄줄이 사탕처럼 낳아놓고, 마누라랑 애들이 굶어 죽어 가는데도 체면 차린답시고 노동 한 번 안 하는 꼴을 보면 속이 안 뒤집어지겠나? 내가 매정하게 내쫓은 건, 그놈 정신 좀 차리고 제 손으로 땀 흘려 일해서 처자식 먹여 살리라는 ‘눈물의 훈육’이었단 말일세. 언제까지 형 등골만 빼먹고 살 순 없지 않은가?


셋째로, 내가 제비 다리를 부러뜨렸다고?

그건... 그래, 그건 내 욕심이 좀 과했지. 인정하네. 하지만 말이야, 나 같은 자수성가형 인물 눈에는 ‘운 좋게 박 터져서 벼락부자 된’ 흥부의 성공이 얼마나 기가 찼겠나. 성실하게 재산을 모아온 나 같은 사람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고! 그래서 나도 그 기회라는 걸 한 번 잡아보려다 악수를 둔 것뿐이네.


사람들은 흥부가 착하다고들 하지? 하지만 무책임한 선함이 얼마나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아는가? 나는 욕을 먹으면서도 내 식구 건사하고, 내 재산 지키며 현실을 살아온 사람이야.


내가 정말 나쁘기만 한 사람인가? 아니면 이 험한 세상에서 장남 노릇 하느라 독해질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사람인가? 자네들이라면 그 상황에서 성인군자처럼 굴 수 있었겠냐는 말이야!


2. 착한 흥부, 못된 놀부라는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착한 동생 흥부, 못된 형 놀부. 그리고 이 단순한 구도 속에서 흥부전은 늘 ‘권선징악’의 대표적인 이야기로 소개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 이야기를 조금만 다르게 읽어 보면, 흥부전은 도덕 동화가 아니라 조선 후기 사회 구조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텍스트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간 선인으로만 평가 받았던 흥부의 민낯과 놀부의 억울한 면을 하나하나 짚고자 한다.


3. 사실 놀부가 유산을 물려받는 건 당연했다.

화회문기

화회문기란 재주 사후에 자녀들이 합의하여 재산을 분배할 때 작성하는 문서를 의미한다. 즉 집안의 가산의 주인인 큰 어른이 돌아가신 후 다음 세대에게 재산을 어떻게 분배하는지를 해당 문서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초기 조선은 꽤 오래 후손을 차별하지 않는 균분상속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는 조선 후기 점차 장자 승계 제도로 수렴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장자 승계 구도로 재산 상속 방식이 변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자식에게 차등 없이 재산을 분배하는 방식은 해당 집안의 경제력 축소로 이어졌다. 가문을 중시한 당대 사회 분위기 상 이러한 모습은 용인되기 어려웠다. 때문에 집안을 대표하여 가문을 이끄는 사람인 장자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하는 풍습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장자가 집안의 계승자로 인정받는 이유는 집안이 건재함을 알리고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의식인 제사를 주관하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의 제사를 지내는 비용을 완전히 현대적으로 산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도 제사를 지내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은 여러 기록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경국대전을 보면 제사를 지내는 장자에게 평균 상속분 외의 제사를 지내는 비용을 가산해서 상속하라는 조항이 있을 만큼 제사 비용은 부담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조선시대에는 위토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위토란 제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토지를 의미한다. 이러한 위토의 수익을 바탕으로 해당 가문은 안정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이는 해당 가문이 건재함을 뜻하였다. 조선 말에는 장자뿐만 아니라 해당 세대의 구성원이 위토를 공동소유 함으로써 종원들이 임의로 위토를 처분하지 못하게 법제화 할 정도로 제사는 반드시 치뤄야 할 의식으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조선왕조 실록의 기록을 보면 1791년(정조15년)에 전라도 진산에서 천주교 신자 윤지충이 조상 제사를 폐지하고 신주를 불태운 일이 발생했는데, 정조는 이러한 사건을 듣고 금수, 오랑캐와 다름이 없다고 비판하며 윤지충을 사형시키고 천주교를 박해하였다는 서술이 등장한다.


일련의 사례들은 조선시대 유교적 사고관이 팽배한 사회에서 제사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알려주고 있다. 조상에게 보은하고 가문의 건재함을 알리는 제사의 명맥이 끊기지 않기 위해 장자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것은 당대 사회에서는 그리 이질적인 일은 아니었다.


흥부전에서 놀부는 흔히 ‘욕심 많은 악인’으로 그려진다. 특히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하고 흥부를 내쫓은 인물로 비난받는다. 그러나 조선 사회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장면은 다르게 보인다. 조선은 철저한 장자 중심 상속 구조를 가진 사회였다.


재산과 가문의 권한은 기본적으로 장자에게 집중되었고, 차자는 상대적으로 분가하거나 자립해야 했다. 즉, 놀부가 재산을 상속받은 것은 윤리적으로는 비판받을 수 있어도, 사회 제도적으로는 ‘비정상’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놀부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당시 사회 질서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인물로 재해석될 수 있다.


우리는 현대적인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있던 것은 아닌가? 제도 속에서 당연히 취할 것을 취한 놀부에게 너무나도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지 않았는가?


4. 흥부는 정말 이상적인 인간인가?

흥부는 늘 ‘착한 사람’의 표상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서사를 차분히 따라가 보면 묘한 지점이 드러난다. 흥부는 거의 노동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생계를 꾸릴 능력을 보여주는 장면은 거의 없고, 주로 구걸하거나 매품을 팔며 연명한다.

조선 말기 풍속 매품팔이, 김춘근

조선의 형벌 제도는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다섯 가지 형벌은 다음과 같다.

1. 태형: 얇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음 주로 경범죄에 적용

2. 장형: 두꺼운 곤장으로 엉덩이를 맞는 것

3. 도형: 죄인을 관청에 붙잡아 두고 힘든 노동을 시키는 것

4. 유형: 죄인을 먼 지방이나 산간 지역에 보내는 것

5. 사형: 죄인의 목숨을 거두는 것


흥부전의 대목을 보면 흥부가 매품팔이를 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매품팔이란 죄를 지은 양반이 매를 맞을 사람을 대신 구하고 그 사람에게 돈을 지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매품팔이가 가능했던 이유는 매를 맞는 형벌이 본인 지역의 관아가 아니라 더 높은 상위 기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인데, 서로의 얼굴을 속속들이 아는 고을 기관이 아닌 상위 기관에서 형벌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때리고-맞는 행위가 이루어짐만을 확인하고 맞는 대상까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폐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흥부전에서는 흥부가 매품을 팔기 위해 유력자와 거래하고 집에 돌아오면서 마삯(말을 빌리는 값)을 먼저 선지급 받고 이후에 매품을 팔러 가는 장면이 서술되는데 이는 형벌 집행 장소가 말을 타고 가야 할 정도로 멀리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성대중의 청성잡기에서도 매품팔이를 언급하며 이러한 매품팔이가 관아가 아닌 병영에서 이루어짐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흥부는 굶고 있는 자식과 마누라를 위해 기꺼이 몸을 바치는 헌신적인 가장이 아닌가? 그것은 장형의 무서움을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청성잡기에 나타나는 매품팔이의 사례에서 한 명은 곤장을 7대 맞다가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형벌을 집행하는 형리에게 돈을 주고 살아났다는 기록이 발견된다. 다른 한 사례는 더욱 딱하다. 욕심쟁이 아내가 매품을 팔라고 남편을 종용하는 바람에 남편은 곤장을 맞다가 사망하게 된다.


곤장은 크기에 따라 소곤-중(中)곤-대곤-중(重)곤-치도곤으로 나뉘는데 이중 치도곤은 길이는 약 173cm, 너비는 약 16cm, 두께는 약 1.2cm에 달하는 대형 무기였다. 이러한 장형이 집행되면 형리에게 뇌물을 주지 않는 이상 죽거나 하반신 불구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흥부가 매품팔이를 하겠다고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는

“그놈의 죄상도 모르고 병영으로 올라갔다가 저 모습 저 몰골에 곤장 열을 맞으면 곤장 아래 혼백 될 것이니 제발 덕분 가지 마오.” 라고 말할 정도로 장형은 무서운 형벌이었다. 오히려 짧은 시각으로 몇 대 맞고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집안의 가장을 비명횡사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아내는 흥부를 만류한다.


하지만 흥부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볼기의 구실이 있나니 ... 쓸데없는 이내 볼기 놀려 무엇한단 말인가. 매품이나 팔아먹세.”

생략된 부분을 제외하고 보면 자신의 볼기가 쓸데가 없으며 매품이나 팔아먹자고 말장난을 할 정도로 현실 감각이 없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줄줄이 낳은 아이들은 또 어떤가? 아비가 목숨을 걸고 매품을 팔러 간다는데 말리지는 못할 망정 하는 말이 가관이다. 다음은 흥부전의 매품팔이 대목에서 자식들이 하는 요구이다.


흥보 자식들이 벌 떼같이 나앉으며,

“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호사가 큼직하오. 그래 아버지 병영 가신다 하니, 날 오동철병 하나 사다 주오.”

흥보 이른 말이

“고의 벗은 놈이 어디다 차게야?”

흥보 큰아들 나앉으며 제 동생들을 꾸짖는데 옳게 꾸짖는 게 아니라 하늘에 사무칠 듯 꾸짖어,

“에라 심하구나, 후레아들 놈들. 아버지 그렇잖소. 나는 담비 가죽 탕평채에 모초의 한 놈과 한포단로 허리띠 비단 주머니 당팔사 끈 꿰어, 쇠 거울 돌 거울 넣어다 주오."


이 구절은 고의(바지)도 벗겨질 정도로 어린 아이가 오동철병이라는 사치품 장신구를 사다 달라고 말을 하고 있으며, 큰 아들이란 놈은 동생들을 꾸짖는 듯 하더니 결국 자기에게 제일 비싼 사치품들을 사다 달라고 하고 있다.


자식은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던가? 현실 감각이 없는 아이들의 말은 사실 부모의 현실 감각과 교육 결과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흥부는 이러한 자녀들의 말에 이렇게 대답한다.

“네 아무것도 안 찾을 듯이 하더니 단계를 높여 하는구나. 너희 놈들이 내 마른 볼기를 대송방으로 아는 놈들이로구나.” 자신의 볼기가 대송방이라는 서울의 큰 개성 상인의 가게인 줄 아느냐는 한탄만을 남긴 채 흥부는 매품팔이를 하러 떠난다.


그리고 흥부는 여러 날만에 병영에 당도하게 되는데 이미 병영은 매품을 팔러 온 이로 가득 하고, 이대로는 자기 차례가 언제 올지 몰라 가난을 자랑하여 가장 가난한 사람이 먼저 매품을 팔기로 제안한다. 그리고 흥부는 이 가난자랑에서 밀려 매품을 팔지 못하고 결국 돌아온다.


그 중 가난에 대한 자랑으로 인상 깊은 구절을 제시한다.

“거기는 참으로 장자라 할 수 있고, 내 가난 들어 보오. 조그마한 한 칸 초막 발 뻗을 길 전혀 없어, 우리 아내와 나와 둘이 안고 누워 있으면 내 상투는 울 밖으로 우뚝 나가고, 우리 아내 궁둥이는 담 밖으로 알궁둥이 보이니, 동네에서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이 우리 아내 궁둥이 치는 소리 사월 팔일 관등 다는 소리 같고, 집에 연기 나지 않은 지가 삼 년째 되었소, 좌우 들으신 바 내 신세 어떠하오?"


현대어로 번역하면 "너네들은 다 나에 비하면 부유하다. 나는 집이 너무 좁아서 누우면 상투가 울타리 밖으로, 마누라 엉덩이가 담 밖으로 넘어가 동네 아이들이 골목 놀이를 하며 아내 궁둥이에 부딪혀 소리가 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아도 이런 가난자랑을 들으면 이겨야겠다는 엄두도 안 날 듯 싶긴 하다.


요약하자면 흥부의 가난은 본인의 무능에 기인하고 있는데, 흥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을 하지 않고 매품팔이라는 불법적이고 위험한 행위에 가담하며, 그조차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간 착한 동생이자 불쌍하고 가난한 이로만 해석되었던 흥부의 지위가 무능한 한량으로 격하되는 순간이다. 게다가 자녀의 숫자는 어떠한가? 구전되던 설화인 탓에 판본마다 자식의 수는 조금씩 다르지만 3명에서 30명에 이른다. 조선시대에는 자식도 노동력으로서 기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많은 수의 자녀를 갖게 되었다고 변명하기엔 모두가 집에서 굶고 있는 판국이라 그 아이러니는 더욱 심화된다.

로또 당첨 이미지

가난을 벗어나는 계기도 자신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제비가 가져온 박씨라는 기적적 보상에 의존한다. 이 지점에서 흥부는 더 이상 ‘현대적 의미의 성실한 인간상’이라기보다, 현실 세계에서는 무력한 존재에 가까워진다. 흥부는 열심히 노력해서 보상받은 인물이 아니라, 그저 서사가 요구하는 ‘선한 인물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다. 흥부의 이미지가 로또 당첨자 정도로 확정되는 순간이다.


5. 놀부는 왜 끝내 망하지 않는가

여태 흥부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비판하며 놀부의 입장을 대변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놀부의 욕심쟁이 악인의 이미지가 마냥 잘못된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놀부는 실제로 심보가 고약하다.


"초상난 데 춤추기,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똥 싼 놈 주저앉히기, 우는 아이 똥먹이기, 길 가는 과객 양반 채울게(주걱)로 쳐서 쫓아내기..."


이렇듯 놀부는 본인의 이익 외에도 타인의 불행을 위해 심술을 부리는 등 심사가 고약한 인물이다. 게다가 위에서 제시한 놀부의 항변에서 끝내 놀부도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 것 자체를 정당화하진 못했다.


그러나 흥부전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놀부의 결말이다. 놀부는 벌을 받지만, 완전히 파멸하지는 않는다. 결국에는 개과천선하고, 형제 관계도 회복된다. 즉 놀부는 평면적인 악인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입체적 인물로 서술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악인은 평생 악인으로 남는 여타 고전소설과 궤를 달리 한다.


이 결말은 인물의 심리 변화로 보면 매우 설득력이 약하다. 놀부가 깊이 반성하는 장면은 충분히 제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작가는 굳이 놀부를 회복시키는 결말을 택했을까? 여기서 다시 조선 사회의 질서가 중요해진다.


철거된 건물 사이의 현수막

장자가 망한 가문에서 차남이 건재하다고 가문은 아직 살아있다고 주장한들 당대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그저 기괴해 보일 뿐이다.

신윤복의 풍속도

놀부는 장자이며, 가문의 대표다. 이 인물이 완전히 몰락해 버리면, 가문 자체가 붕괴된다. 즉, 서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놀부는 ‘끝까지 망해서는 안 되는 존재’인 셈이다. 그래서 놀부의 개과천선은 윤리적 감화의 결과라기보다, 장자 중심 질서를 보존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로 읽을 수 있다.


6. 흥부전은 누구를 위한 이야기인가

이렇게 읽고 나면 흥부전은 더 이상 단순한 교훈담이 아니다.

1. 흥부는 지나치게 무력하고


2. 놀부는 제도를 따르는 인물이며


3. 체제 자체는 끝까지 유지된다.


흥부는 선인의 이미지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능한 사회 하층민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부자가 되지만, 이는 흥부의 노력에 의거한 것이 아니다 제비의 보은에 의한 기적 같은 성공담은 가난이 존재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눈을 가릴 뿐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놀부는 개인적 행실이 나쁘기도 하지만 우리가 놀부를 심술쟁이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재산을 모두 가로챘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가문 의식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던 조선후기 사회를 생각하면 놀부는 그저 체제를 따른 인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놀부는 벌을 받지만, 개과천선하여 가문은 유지된다. 시원한 사이다처럼 놀부가 끝까지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흥부도 놀부를 용서하면서 모든 것이 ‘봉합’된 채 이야기는 끝난다. 흥부전은 체제를 비판하는 이야기라기보다, 체제를 정당화하고 안정시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초두 효과, 이른바 첫인상 효과는 우리의 사고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 국어 시간에 도식적으로 배웠던 "흥부는 착해요, 놀부는 나빠요. 흥부는 착해서 복을 받고, 놀부는 벌을 받았어요." 하는 진리는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 되어 우리에게 의심의 여지를 모두 앗아가 버렸다.


우리 조금은 열린 시각에서, 그 사람이 왜 악인처럼 비쳐지는지 타인을 이해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미워하고 살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다.


이 글을 읽은 뒤에 이런 생각을 더 해봐도 좋겠다.


1. 흥부전 속 가난은 개인의 책임인가?, 사회의 책임인가?

- 두 가지 중 어떤 입장인지 밝히고, 그 이유에 대해 당대 사회적 배경을 참고하여 서술해보자.


2. 자신의 삶에서 악인으로 낙인 찍은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자는 왜 당신에게 악하게 행동했는가?

- 해당 인물의 악행의 이유와 본인의 호불호의 근원을 찾아보자.

- 혹시 그 인물의 언행이 이해가 된다면 용서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1. 『조선왕조실록』 정조 15년 10월 20일.

2. 성대중, 『청성잡기』.

3. 『경국대전』 형전.

4. 『흥부전』.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