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by 미스루

나는 모성간호학 수업시간에 배운 텍스트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고위험 임신의 모체 측 요인
: 35세 이상 고령 임신(또는 19세 이하),
임신 전 기저질환, 비만 또는 저체중, 이전의 유산/조산 병력,
음주, 흡연, 약물 복용 등 부적절한 생활 습관



아파트 단지에서 서너 살쯤 된 아이와 함께 지나가는 여자를 보았다.

가느다란 몸에 배만 불룩하게 나와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녀의 나이를 가늠해 보았다.


임신을 하고 나니 세상에 임산부만 보였다.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나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요즘 마흔이 무슨 노산이에요~”

마흔 즈음 임신한 언니들이 걱정하면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던 말인데,

나 자신에게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V] 만 38세

[V] 정신과 약물 복용

[V] 음주


나는 조용히 체크 표시를 했다.

세 개였다.


나의 불안을 눈치챘을까?


유튜브와 SNS 알고리즘은

검색한 적도 없는

선천적 질환이나 기형을 가진 아이들의 영상을

내 피드 위로 밀어 올렸다.


마치

‘준비해 둬’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때마다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화면을 넘기면 불안도 함께 사라질 것처럼.




드디어 기형아 검사를 할 수 있는 주수가 되었다.

의사가 설명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말했다.


“니프티 검사로 할게요.”


55만 원과 나의 불안을 교환하기로 했다.


간호사가 검사 설명을 하며 말했다.

"검사 결과가 100% 확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나는 말없이 검사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 일주일 후.


문자가 왔다.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문자를 다시 한번 봤다.


'여아'


한동안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백화점에서 봤던 앙증맞은 원피스와 구두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의 뒤늦은 임신 소식을 접한 지인들은 '딸'이라는 말에 한결 같이 말했다.


"어머~ 성공했네. 축하해요!"


성공이라니. 내가 무엇을 성공했단 걸까.

그 단어가 껄끄러우면서도 '감사해요'라고 답하며 웃었다.


사실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나에겐 어렴풋한 확신이 있었다.

아이는 딸일 것이라고.


결혼 초 재미 삼아 사주를 봤을 때 역술가가 말했었다.


"딸이 보이네요. 그런데 아들도 있어요.

그럼 아무래도 아들이 첫째인 게 좋지 않겠어요?"


첫 아이로 아들이 태어난 후,

만약 두 번째 아이가 생긴다면 딸 일 거라고 막연히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예감은 맞았다.

나는 기쁘면서도 기쁘지 않았다.


직감은 늘 좋은 것으로만 오지 않으니까.




아들이 쓰던 낡은 유아용 침대를 버리고 둘째 방으로 쓰기로 했다.

며칠을 검색한 끝에 아기의자를 당근에서 사 왔다.

아들이 어렸을 때 사고 싶었던 트립트랩.

연한 분홍색의 서린핑크로 골랐다.


밤새도록 당근을 뒤지고, 아기용품을 검색했다.

작은 방에는 아기가 쓸 물건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핑크색 커튼을 달았다.


나의 세계를 지배하던 알고리즘은 어느새 아기용품 리뷰들로 바뀌었다.


나는 '혹시'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마다

얼른 화면을 넘겼다.


고개를 젓고 눈을 감았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6화에 이어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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