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과 비상계엄

by 미스루

11월 말.

패딩 점퍼를 꺼내 입어보니 팔이 겨우 들어갔다.
만삭의 배를 감싸기 위해
이번 겨울은 남편의 오래된 패딩 점퍼를 입기로 했다.


첫눈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눈이 내렸다.

도로가 끊기고, 아파트 단지의 큰 소나무들이 쓰러졌다.
아이 학교에는 긴급 휴교령이 내려졌다.


학교에 가지 않게 된 아이는
세상이 어떻든 아랑곳없이
무릎까지 쌓인 눈을 보며 신이 났다.


나는 눈사람 같은 몸을 이끌고
아들과 눈밭에서 눈을 뭉쳐 던지며 사진을 찍었다.


쏟아지는 눈 속에서

아들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휴대전화 배경화면으로 바꿨다.




폭설이 지나고 일주일 뒤,


남편이 오늘 좋은 일이 있었다며 맥주 캔을 땄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거실 소파에 앉아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었다.


단톡방에 기사 링크가 올라와 있었다.


“가짜 뉴스도, 합성도 아니고

실제 상황입니다.”


12월 3일 밤 10시 27분.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미친...”


내 말을 들은 남편도 낮게 신음을 내뱉었다.


유튜브 화면 속에서
군 헬기가 국회에 내려앉고 있었다.


이건... 진짜다...


국회의원들이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시민들이 무장한 군인들을 막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나와 남편은 휴대전화로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 상황을 확인했다.


자정이 넘었지만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 수 없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어도 출근해야 한대.”


남편은 이 말을 남기고 침실로 들어갔다.


남편이 들어가고 나자 거실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못했다.


일주일 후면 출산 예정일인데...


갑자기 진통이 오면 어떻게 하지?


내일 아이를 학교에 보내도 되는 걸까?





탕- 탕- 탕-

의사봉이 내려쳐졌다.


새벽 1시 1분.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그제야 피곤이 몰려왔다.
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리고 있었다.


새벽 2시.
갑자기 배가 뭉쳐왔다.
가진통이겠지 싶으면서도

급하게 진통 체크 앱을 내려받아 진통 간격과 시간을 입력했다.

곧 메시지가 떴다.


[지금 바로 병원에 연락하세요.]


새벽 3시.
망설이다 분만실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남편을 깨우려다 멈칫했다.


아직 아닐 수도 있다.


거실로 나와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담요를 턱 끝까지 덮었다.

양손을 통증이 느껴지는 곳에 올려두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괜찮아, 아가.

괜찮아.


새벽 4시가 되어 갈 무렵,

진통이 아닌 것 같아 조금 더 지켜보겠다고 분만실에 연락했다.


통증이 잦아들자

공포가 찾아왔다.


가슴이 답답했다.

숨이 막혔다.


소파에 앉지 못한 채

어두운 거실을 서성거렸다.


숨을 쉬어야 해.

숨을 길게 내뱉어야 해.


밤은 끝날 줄 모르고 길어졌다.




며칠 뒤, 산부인과 정기검진 날.


의사가 말했다.


“양수 양이 조금 적네요. 유도분만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날짜를 잡아보죠.”


그 말이 정말 반가웠다.



유도분만은 사흘 뒤, 화요일로 정해졌다.
양가에 알리고 남편도 휴가를 냈다.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냈고,

아들은 엄마를 한동안 못 보는 거냐며 서운해했다.


유도분만 예정일을 하루 앞둔,

월요일 새벽 5시 30분.


싸한 느낌에 눈이 떠졌다.



배가 아팠다.


이건—

진통이다.



(8화에 이어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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