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by 미스루

니프티 검사 결과는 정상.

첫째 때 재검까지 갔던 임신성 당뇨 검사도 이번엔 한 번에 통과했다.


당뇨 검사를 받고 병원에서 나와 근처 냉면집으로 들어갔다.

테이블마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나는 홀로 구석진 창가 자리에 앉았다.

달짝지근한 숯불 불고기가 함께 나오는 비빔냉면 정식을 주문했다.


냉수를 컵에 따라 마시며 창밖 풍경을 바라봤다.

여름의 열기가 올라오는 거리에 커다란 은행나무의 초록 그늘이 눈에 들어왔다.


첫 임신 때는 입덧이 끝난 뒤에도

조미료 냄새를 맡으면 속이 울렁거렸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밥을 지을 엄두는 나지 않았고,

배달음식도, 외식도 할 수 없었다.

현관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를 때마다

구수한 밥 냄새와 함께

나를 반겨주는 친정엄마를 상상했다.


그런데 이번 임신은 조금 달랐다.

그사이 세상엔 입덧약이라는 게 생겼고

내게도 꽤 효과가 있었다.

입덧이 끝나자 컵라면이 몹시 당겼다.


잠시 후 비빔냉면 정식이 나왔다.

돌돌 말린 냉면 위에 새빨간 양념장이 얹혀 있었다.

불고기를 곁들여 양념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덜컹거리는 버스 창밖 풍경이 유난히 싱그러웠다.




역대급 폭염, 긴 열대야가 이어지던 여름이었지만

나는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

에어컨을 켜둔 집안에서 한가롭게 하루를 보냈다.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키고

산책을 하고 들어와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거실 소파에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었다.

미뤄뒀던 공부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언제든 앉을 수 있고,

걷고 싶을 땐 걸을 수 있고,

심지어 침대에 누워 잘 수도 있는 삶.


먹고 싶은 것을 먹었고,

눈치 보지 않고 화장실에 갔고,

산부인과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져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일을 하며 임신과 출산을 버텨낸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이었는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그 시절을 통과해온 과거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힘들었지.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정신과 정기 진료일이었다.


"선생님, 저 이제 약은 하루에 한 번만 먹어도 될 것 같아요."


의사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가을까지 기승을 부리던 늦더위가 무색할 만큼
바람은 순식간에 서늘해졌다.


하루 종일 열어두던 거실 창을 닫았다.


산달이 다가오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듯

무심하게.



(7화에 이어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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