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나는 곳 : 숨결식당

15장. 흔들림

by 대성림

15장. 흔들림


비가 다시 시작된 날이었다. 예보에는 없던 비였다.

처음엔 가늘게 떨어졌다가 어느새 굵어졌다. 골목 바닥이 다시 젖었고, 어제 마른자리가 지워졌다.


지워지는 건 늘 이렇게 조용했다.


손님은 뜸했다.

라디오에서는 경기 뉴스가 흘렀다. 점수와 선수 이름, 해설이 이어졌지만 오래 남는 건 없었다.

로운은 계산대에 앉아 머그잔을 두 손으로 쥐고 있었다. 열이 손바닥을 타고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래도 속까지 닿지는 않았다.


문이 열렸다.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썼고 눈만 보였다.
시선이 안을 훑었다. 탁자와 주방, 출입문을 빠르게 계산하듯 스쳤다.


“식사 돼요?”

목소리는 낮았고 부드러웠다. 비어 있지는 않았다.


“네.”


남자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메뉴를 오래 보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켰다 껐다 하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짧은 영상. 숫자. 움직이는 그래프.


로운은 보지 않으려 했지만 보였다. 자기 손이 머그잔을 더 세게 쥐고 있다는 걸 조금 늦게 알아챘다.


“혹시… 요즘 애들 많이 와요?”


손이 멈췄다.

“네. 왜요?”


“아니요. 그냥.”

눈은 웃지 않았다.


국이 나왔다. 김이 천천히 올라왔다. 남자는 몇 숟갈 뜨다가 멈췄다. 숟가락보다 화면을 더 자주 보았다.


문자가 잠깐 켜졌다가 사라졌다.

LNK-Bridge.


가슴이 아주 작게 뛰었다.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숨이 짧아졌다.

돈. 속도. 도망.
흔들릴 때는 이유보다 기억이 먼저 움직였다.


남자가 계산대로 다가왔다.

“혹시 여기서 일하는 애, 소개 좀 받을 수 있을까요.”


“무슨 소개요.”


“알바요. 좋은 데 있어요. 돈 빨리 벌 수 있는.”

말은 부드러웠다. 너무 부드러웠다.


명함 하나가 내려놓였다. 하얀 카드였다. 이름도 로고도 없고 번호만 적혀 있었다.

숫자가 또렷했다. 비에 젖은 거리보다 더 선명했다.


손이 앞으로 나갔다.

멈췄다.


예전 같았으면 이미 집었을 것이다. 지금도 아주 잠깐 당겨졌다.

숨이 먼저 나왔다.

후—

손을 거뒀다.


“필요 없어요.”

목소리가 조금 늦게 나왔다. 그래도 흔들리지는 않았다.


남자의 눈빛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자리 찾기 힘들어요. 애들한테도 좋아요.”


말이 걸렸다.

괜히 튀는 건가. 괜히 놓치는 건가.

숨을 다시 내쉬었다.


“여기는 그런 데 아니에요.”

이번에는 또렷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빗소리가 지붕을 때렸다.


남자는 명함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알겠습니다.”

끝까지 부드러웠다.


문이 열리고 닫혔다.

종이 한 번 울렸다.


한동안 로운은 그대로 서 있었다. 머그잔은 식어가고 있었다. 손에는 땀이 배어 있었다.

심장이 조금 늦게 내려왔다.


준서가 물었다.

“형, 왜 그래요.”


“아니.”

잠깐 숨을 고르고,

“조금 흔들려서.”


준서는 더 묻지 않았다. 고개만 끄덕였다.

그게 고마웠다.


흔들림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지나가게 두는 거였다.


그날 밤, 로운은 기록을 남겼다.

오늘 문이 다시 열렸다. 나는 잠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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