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일상을 전달받는 사람
코로나로 인해 부모님은 때아닌 황혼육아를 시작했다. 5살 남자아이는 할머니 집에 녹아들었고, 부모님의 시간도 아이의 시간에 맞춰져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안도했지만, 낯선 여행지의 밤, 엄마의 품에 안긴 아이는 “할머니랑 자고 싶어”라고 말했다.
(이전 이야기)
요즘 신도시는 아이들의 열기로 후끈하다.
오후의 식탁 위에서는 저출산 문제가
매일 먹는 김치처럼 오르내리지만
여기서는 딴 세상 얘기였다.
신혼부부들은 아파트를 원했고
자연스레 신도시는 아이들의 북적거림으로 들썩였다.
큰아이가 할머니집으로 갈 때 핀 개나리가
벌써 져버렸다.
그 자리가 아쉬운 듯 매미는 힘차게 울어댔다.
신도시의 한복판,
오직 조용한 곳은 우리 집 밖에 없었다.
큰아이가 남기고 간 흔적들도
벌써 다 져버리고 있었다.
조용해진 집 안,
아이의 시간의 몫이 빠져버린 듯
시계 초침소리가 왠지 작게 느껴졌다.
울적한 마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ㅇㅇ이 바꿔주세요.... ㅇㅇ아! 아빠야"
"응, 아빠!! 나 지금 할아버지랑 씻고 나왔어! 왜요?"
"ㅇㅇ이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내일 토요일인데 어디
가고 싶은데 없어?"
"나 아쿠아리움 가고 싶어! 내일 가자! 잘 자요!"
어느새 큰아이는 할머니집에 녹아들었다.
아이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아빠는 일상을 전달해줘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아이의 하루는
이미 나 없이도 잘 굴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하루를
나중에 전달받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미 환한 거실에 전등을 하나 더 켰다.
아이가 없는 집에서 나는 오히려 분주히 움직였다.
정리할 게 없어서 오히려 손이 더 바빴다.
아이의 컵을 씻고, 여벌 옷을 가방에 넣은 뒤
아빠만 챙겨줄 수 있는 간식을 준비했다.
달콤한 맛에 한 번 넣어 씹으면,
끈적하게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젤리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곰돌이젤리를
양손 가득 손에 쥐어 가방에 챙겨 넣었다.
한 봉지도 흘리지 않겠다는 듯,
가방 지퍼를 단단히 여몄다.
아내는 몸에 좋지도 않은
간식을 너무 많이 챙긴다며
눈을 흘겼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나는 거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TV를 켜고
젤리 한 봉지를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입 안 가득 젤리의 달콤함이 퍼져갔고
얼굴에 나지막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일 하루가 특별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젤리는 이내 사르륵 녹아 사라져 갔다.
나는 어쩐지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졌다.
<어쩌다 여기까지> 시리즈는
각각의 글 하나로도
읽고 즐기기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전 글을 함께 보시면
더 깊게 즐기실 수 있습니다. by 밤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