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왜 지금, 왜 이 글을 쓰게 되었을까….

by 최용석

왜 지금, 왜 이 글을 쓰게 되었을까….

최근에 한 선배가 근황을 물어왔다. ‘몸은 좀 어때?, 요새 뭐 하면서 지내?’ 중년이 되면 전화해서 묻는 다소 일상적인 안부 인사였지만, 염려의 진심이 전화기 너머에서 느껴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쉬면서, 글을 좀 쓰고 있어요.’라고 했다.

‘12월 말까지는 어느 정도 정리하려고 해요’라고 했더니, ‘뭘 그리 급하게 쓰려고 해. 천천히 해’라고 하신다. 글을 많이 다듬으라고 하시는가 보다 싶어서 그냥 웃었다. 타이핑이 워낙 늦어서 머릿속에 있는 것 다 치려고 해도 한참이 걸린다. 거의 15년 전부터 업무 특성상 타이핑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입으로만 먹고산 거다.

얼마 후 모임에서 만난 선배는 내 낯빛부터 살피곤, 전신 CT 촬영하듯이 몸을 훑었다. 뭐 워낙 찬찬히 관찰하시는 분이고, 오랜만에 보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픈 데 없지?’라고 묻는 품이 좀 심상치 않았다. 혹시나 내가 나쁜 마음을 품게 돼서 책을 쓰고 정리하려고 한 게 아닌지 걱정하셨단다.

오십 대 중반이 되면,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걱정과 심신 쇠약과 질병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갑자기 연락이 오는 경우의 둘 중 하나는 자녀 결혼식 청첩이나 부고인데, 본인 상(喪)인 경우는 참으로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다. 우리가 그런 나이인 거다.

남자들이 직장을 자의든 타의든 그만두고 나면, 직장만 없어졌는데, 마치 본인 자신이 사라진 듯 좌절이 더 심한 것 같다. 일과 본인의 존재 가치를 동일시 여겨서 상실감이 더 큰 거다. 그럴 필요 없다는 건 본인 자신도 잘 알고 여유롭게 웃지만, 속으론 지진이 난다. 표현도 못 하고, 괜히 의연한 듯 가면을 쓴다. 그리곤 대책 없는 고민의 사막으로 첫발을 들이민다. 정말 의연한 사람은 사막으로 들어가지 않지만, 의연함이란 한국 직장인들에겐 참 어려운 거다. 그렇게 의연하다가는 직장생활에서 생존하기 더 어렵다는 걸 몸으로 배웠으니까. 그래서 더 조급하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윤형(輪形) 방황이라는 말이 있다. 눈을 가리고 걷거나, 사막처럼 주변이 비슷한 곳을 걸을 때, 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현상이란다. 오십 대의 방황과 고민은 이런 꼴이다. 방향을 알려주는 인생의 북두칠성이나 이정표가 없으면 생기는 것 같은데, 쌓이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계속해서 곱씹다 보면 다시 제자리인 거다. 상처의 아픔에 대한 공감을 얻고자 조금 아문 상처 딱지를 뜯어내서 보여주는 꼴이다. 결국 그 상처는 흉터만 남고 아물지 못한다. 상처 보여주기에 지치거나 처음부터 건들지 말아야 상처가 아문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전적으로 내 얘기고, 내가 어찌 다른 사람의 속내를 다 알겠는가?

그리고 난 원숙한 철학자도 아닌, 그냥 오십 대의 어중간한 어른 중 하나이니까.

실직을 하고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금 그 사막을 향해 걸어가려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뭐든 해서 발길을 돌려야겠다는 위기감에, 일단은 나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했다. 솔직히 자기 객관화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을 판단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자책 아니면 자기 합리화밖에 없는 것 같고, 바로 뒤를 졸졸 따라오는 놈이 핑계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기쁨과 상처가 있다. 그 크기가 크든 작든 행복하냐, 불행하냐 느껴지는 순간들 말이다. 그런데 기뻤던 일들은 휘발성이 강하고, 안 좋았던 일들은 찐득하게 붙어서 오랫동안 안 떨어진다. 내게 남아있는 찐득한 기억을 조금이라도 씻어내고, 기억 저편으로 날아가는 좋은 추억은 박제해서 정리를 해 두면,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럼 다시 새로운 경험으로 채울 수 있겠지.

인생의 하프타임에 와 있는 거라 나 자신을 세뇌하면서 후반전 준비를 위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내게도 하프타임의 기적이 생기면 좋겠으니까. 글을 써서 정리를 하면 어떨까, 싶어졌다. 일기처럼 정리하면 최소한 거짓말은 안 할 테니까.

에피소드를 하나씩 써가다 보니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글로 남긴다는 게 누군가에겐 읽힌다는 거고, 그로 인한 문제도 우려가 되었다. 거기다 글로 남길 수도 없는 것들이 상당히 많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도 당당하지 못하게 살아온 걸까? 그럼에도 처음 의도한 대로 정리하기로 했다.

가능한 것만이라도.

어릴 때 겪었던 일들과 사회에서의 직장인으로 겪은 일들과 개인적인 신변잡기의 일들을 두서없이 끄적이며, 일어난 일들과 그때의 감정을 토닥거리듯, 격려하듯이 정리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그게 뭐가 힘들어?’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들은 ‘그래, 너 잘났다.’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내 마음이다. 내 책이고.

다만 읽는 분들이 ‘나도 비슷한 상처가 있었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거나, ‘나는 이럴 때 즐거웠지.’라고 떠올리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 중의 하나가 되길 바란다.

욕을 해서 기분이라도 풀리면 다행이다.

몇 년 정도 일기를 쓰면서 조금씩 하루를 짧게라도 정리해 보긴 했지만, 태어나서 책을 처음 쓰는 두려움과 어색함은 시간이 갈수록 짙어졌다. 그래도 내게 의미 있는 하나의 행위를 한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대견하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