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내리는 날이면

끈적하게 남아 있는 기억들

by 최용석

첫눈 내리는 날에는


“어, 갑자기 비가 눈으로 바뀌고, 눈발이 굵어지는데? 올해 첫눈이네? 이런 날은 나가서 다 같이 소주 한 잔 해야 하지 않나?”


입사 2년 차였던 1998년 11월 19일에 맞선 자리가 생겼다. 어머니께서 한 달 전부터 아침마다 전화해 꼭 만나보라고 독촉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 난 인연을 믿었기에 인위적인 만남은 싫어 계속 어머니 요청을 거부했었다. 인사동에서 6시에 만나기로 해서 나가려는데, 옆자리 선배가 술 마시자고 한다. 대충 둘러대려다가 그랬다간 못 빠져나올 것 같아 사실대로 얘기했더니, 과장들이랑 차장들에게 떠들며 반쯤 놀려댔다. 고개를 숙이고 머쓱해하며 사무실을 나왔다. 첫눈치고는 눈발이 꽤 거셌지만, 첫눈 오는 날 맞선이 운명 같기도 하고 무슨 마법이라도 있을 것 같아, 얼굴을 때리는 눈발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1992년 원주의 첫눈은 11월 12일이었다. 남들은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에서 맞는 첫눈은 맨발에 신은 슬리퍼를 적시며, 두 발의 발가락들을 동상에 이르게 했다. 4미터가 넘을 것 같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하늘은 온통 눈밖에 없었다. 무심한 짙은 회색 하늘.


1992년 1월 논산 훈련소로 입대했다가, 고질적인 아토피 때문에 재검으로 귀가했다. 6개월 후 단기사병으로 재입대해서 좋다고 했더니, 속칭 백 없는 사람들만 간다는 경비 중대로 배치되었다. 현역보다 빡세다는 ‘전투 방위’. 물론 현역이 기간도 길고 더 힘든 게 사실이지만 여기도 만만치 않았다. 전쟁 나면 예비군을 배치하기 전까지 병참선 지키는 총알받이 역할이라 훈련도 꽤 많이 하고 거친 부대였다. 거기서 얼차려 받다가 목을 다쳤다. 신경을 다쳐서 인지 한쪽 팔에 마비도 왔다. 그걸 얘기했다고 못살게 굴던 고참들의 괴롭힘은 점점 심해졌고, 회의와 번민으로 점점 삶의 의욕까지 잃었다. 지금도 느끼는 거지만 세상 사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니까. 그 당시 어리고 나약한 나란 인간은 살기를 포기했다. 학업의 지속 여부, 사람과의 관계, 진로와 경제적인 어려움 등등 온갖 걱정들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난 힘든 상황에서 도망은 잘 간다.


참 별게 다 자랑이다.


1992년 10월 28일은 이상한 종교집단이 떠들던 휴거가 일어난다는 날이었고, 온 나라 뉴스는 온통 휴거 얘기뿐이었다. 나는 그날 비를 맞으며 서울로 도망쳤다. 부산에 있는 동생을 보러 갔다가 태종대로 향하려고…. 그러나 아무것도 못 하고,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3일 만에 자수를 했다. 그리곤 4미터가 넘을 것 같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첫눈을 맞이한 거다.


첫 맞선을 봤던 그 여성과는 그날 이후 아직 헤어지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헤어지지 못할 것이다. 첫눈의 어떤 마법이 아직도 힘을 발휘하고 있는 거 같다. 당연히 처음엔 많이 다투고, 서로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던 적도 많았지만, 이젠 서로 상대가 싫어하는 게 무언지 잘 안다. 최소한 싫어하는 건 건드리지 않는다. 남편은 임원 자리에서 잘리고, 아들은 고3이고, 둘째는 사춘기가 왔고, 본인은 갱년기가 시작되었던 그해에도 그 여성은 담대했다. 재작년 둘째 대학입시까지 훌륭히 치러내면서 단 한 번도 딸아이나 나와의 마찰을 만들지 않았던 사람이다. 장가는 참 잘 갔다.


뭐든 처음이라던가, 첫 번째라는 단어가 붙는 일엔 낯섦, 두려움, 어려움이라는 감정이 몸을 굳게 만드는 거 같은데, 이상하게 첫눈은 가슴을 설레게 하는 거 같다. 그리고 난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최소한 업무와 관련해서는 그렇다. 그래서 매번 아무도 맡기 싫은 처음 하는 업무를 맡았던 거 같다. 잘해왔으니 다행이다.


올해도 첫눈 내리는 날에는 어떤 마법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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