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오해가 우리로

엇갈린 마음이 포근함으로 여무는 순간

by 아를밤

대부도의 아침은 눈부시게 맑았다. 어제의 비가 공기 중의 먼지를 모두 씻어낸 덕분에, 창밖으로 보이는 서해는 은은한 에메랄드빛을 머금고 있었다.

이수와 도진은 늦은 점심으로 바지락 칼국수와 해물파전을 먹었다.

"와, 진짜 시원하다. 어제 마신 소주가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야."

도진은 땀을 흘리면서도 연신 감탄하며 이수의 앞접시에 파전을 놓아주었다.

이수 역시 이 평온한 일요일의 식사가 꿈만 같았다. 주말 매출이 가장 높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모두 알바생에게 맡기고 떠난 건, 매장을 연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수에게 이 이틀은 쉽게 비워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식사 후, 두 사람은 휴양지 컨셉의 유명한 바다 옆 카페로 향했다. 이국적인 파라솔 아래 앉아 커피를 마시던 이수는 당연하다는 듯 다음 일정을 떠올렸다. 어렵게 비운 주말인 만큼, 오늘 밤늦게까지 도진과 함께하며 이 해방감을 만끽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수의 제안에 도진의 눈동자가 깊게 흔들렸다. 그는 찻잔만 만지작거리며 창밖 주차장 쪽을 자꾸 힐끔거리더니, 이수의 눈을 피하며 어정쩡하게 입을 뗐다.

"어... 그게, 이수야. 우리 이제 좀 일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아. 지금 출발해도 집에 가면 시간이 꽤 될 것 같네."

이수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제 막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도진은 벌써 마음이 저만치 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벌써? 이제 두 시밖에 안 됐는데..."

이수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저녁까지 함께하겠다고 둘이 명확히 약속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수는 주말 전체를 통째로 뒤로하고 온 만큼, 도진 역시 오늘 하루 끝까지 곁을 지켜줄 거라 믿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집 상황이 좀 그래서. 우리 어머니도 계시고, 애들도 주말 내내 맡겨둔 게 처음이라 마음이 영 불편하네. 아무래도 지금 가야 할 것 같아. 미안."

도진은 속으로 자책했지만, 밖으로 나온 말은 그저 '집 상황'과 '불편한 마음'뿐이었다. 이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도진의 조급한 눈빛을 보는 순간,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내가 내어준 이틀은, 이 사람에겐 잠깐의 외출이었나’

"아... 그렇구나. 자기는 주말에 애들 맡기고 나랑 있는 게 그렇게 마음 쓰이는 일이었나 보네. 나처럼 그냥 애들끼리 두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고."

도진은 당황한 듯 이수의 기색을 살폈지만, 이미 조급함에 점령당한 머릿속은 더 이상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했다.

"아니, 체리야. 그런 뜻이 아니라... 처음이라 그래. 마음이 좀 조급해서..."

"됐어. 가야지, 자기 마음이 불편하다는데. 일어나자."

이수는 차갑게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대부도의 따뜻했던 햇살이 순식간에 서늘한 바닷바람으로 변해 이수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차 안에는 웅웅거리는 타이어 마찰음만 가득했다. 이수는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서운함을 꾹꾹 눌러 담았다.

한참을 달리던 차가 대부도 초입의 어느 유명한 찐빵집 앞에 멈춰 섰다. 도진은 시동을 끄고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체리야, 여기 찐빵이 그렇게 유명하대. 어머니랑 우리 딸들 갖다주게 좀 사 가자. 어른들도 좋아하시고 애들도 간식으로 잘 먹는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자기야, 바닷바람이라 그런지 바람이 꽤 차네. 차에 있어. 나 혼자 얼른 다녀올게"

이수는 멍한 눈으로 차에서 내리는 도진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일순간 하얘졌다. 자신은 도진이 서두른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비난하고 있었는데, 도진은 그 서슬 퍼런 신경질을 묵묵히 받아내면서도 이수의 어머니와 두 딸을 챙기고 있었다.


이수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직 도진은 찐빵집의 긴 줄 끝에 가 닿기도 전이었다. 이수는 빠른 걸음으로 그의 뒤를 쫓아갔다. 이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지금은 그저 사족처럼 느껴졌다. 대신 이수는 도진의 곁에 바짝 다가서서 그의 옷소매를 살며시 맞잡았다.

도진은 의아한 듯 이수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빛에 담긴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읽어낸 듯 말없이 허허 웃었다. 그는 이수의 손을 꽉 맞잡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내주었다.

"추운데 왜 나왔어, 자기야. 춥지 않아?"

도진의 다정한 물음에 이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댄 채 작게 속삭였다.

"...옆에 있을래."

도진은 그 대답이 못내 기분 좋은지 이수의 손을 한 번 더 꽉 쥐었다.

"그래, 그럼. 줄이 좀 길긴 한데 금방 빠질 거야. 우리 같이 기다리자."


찐빵을 사고 다시 차에 올라탄 뒤, 침묵을 먼저 깬 건 도진이었다. 그는 핸들을 잡은 손을 만지작거리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수야, 아까 카페에서 서두른 거... 정말 미안해. 사실 우리 집 상황이 조금 복잡해. 아버지가 예민하셔. 애들 맡겨두고 온 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무거웠어. 어머니가 이번에 억지로 쉬시기까지 하셨는데, 눈치까지 보실까 봐. 혹시라도 애들 때문에 화라도 내실까 걱정됐고."

도진이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이수는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도진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의 서두름 뒤에는 이수에 대한 싫증이 아니라, 자신의 부재로 인해 힘들어할 가족들에 대한 절박한 미안함이 있었다.

"내가 너무 어버버거렸지? 자기가 큰 마음 먹고 비운 이틀인데, 내가 너무 내 상황만 생각했나 봐. 정말 미안해, 이수야."


이수는 맞잡은 도진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생각했다.

이수에게 이 여행의 진짜 마침표는 화려한 노을이 아니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 봉지 너머에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도진이라는 사람의 삶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오해 없이 바라봐주고 기꺼이 곁을 지켜주는 이수를 보며, 도진의 마음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묵직하게 차올랐다. 투박한 자신의 생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에게 전심을 다하는 것은, 그에게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 몫의 서운함을 앞세우느라 상대의 고단한 등 뒤를 보지 못했습니다. 칼날처럼 벼려진 오해를 거두고 나니, 그제야 나를 위해 서둘렀던 타인의 진심이 선명하게 읽힙니다. 무심하게 건네받은 온기 하나에, 뾰족했던 마음이 속절없이 둥글어지는 찰나입니다.

"추워도, 자기 옆에 있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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