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수면

4.4. 걸으면 잠이 잘 올까

by 성효경

밤 11시가 넘었는데 잠이 안 온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아도 머릿속이 조용해지지 않는다. 내일 할 일, 오늘 못 끝낸 일, 아이들 학원 스케줄. 뒤척이다 보면 새벽 1시가 되고,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런 밤이 일주일에 두세 번쯤 찾아온다. 수면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도움이 되는 게 없을까.


걸으면 잠이 잘 올까?

노스웨스턴 대학교 신경과의 리드 연구팀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Sleep Medicine, 2010). 55세 이상, 3개월 이상 불면증을 겪고 있으며, 하루 수면 시간이 6.5시간 미만인 사람 17명(여성 16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했다.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수면무호흡증 등 다른 수면 장애가 없는지를 먼저 확인한 뒤,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을 진행했다. 한쪽은 16주간 주 4회, 회당 30~40분의 중강도 유산소 운동을 실시했고, 다른 한 쪽은 같은 기간 박물관 강연, 요리 교실, 독서 모임 같은 비운동 활동에 주 3~5회 참여했다. 운동 방식은 걷기, 고정식 자전거, 트레드밀 중 참가자가 직접 골랐고, 운동 강도는 최대 심박수의 75%로 맞췄다. 운동 시간대는 오후 1시에서 저녁 7시 사이로, 두 그룹 모두 수면 위생 교육을 함께 받았다.

16주 후, 운동 그룹의 피츠버그 수면 질 지수(PSQI) 총점이 유의미하게 개선되었다. PSQI는 0~21점 척도로, 점수가 낮을수록 수면이 좋다는 뜻이고, 5점을 넘으면 수면 장애로 분류된다. 운동 그룹은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수면 잠복기), 총 수면 시간, 수면 효율, 낮 동안의 졸림 네 항목 모두에서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다. 특히 수면 시간이 1시간 15분 늘어났다. 하루 6.5시간 미만을 자던 사람이 7시간 넘게 잔 것이다. 연구팀은 이 증가폭이 "다른 비약물 불면증 치료에서 보고된 것보다 크다"고 언급했다. 수면 위생 교육만 받은 그룹에서는 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운동 그룹의 참가자들은 기분(CES-D 우울 척도)과 삶의 질(SF-36)도 함께 좋아졌다.


주관적 설문이 아니라 뇌파로 확인한 연구도 있을까?

스탠퍼드 대학교의 킹 연구팀이 12개월짜리 실험을 했다 (Journal of Gerontology, 2008). 실험 설계가 리드 연구와 비슷한데, 이유가 있다. 두 연구 모두 미국스포츠의학회(ACSM)와 WHO가 권장하는 표준 운동량(주 150분, 중강도)을 기준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킹 연구팀은 55세 이상, 가벼운~중간 수준의 수면 불편을 호소하는 66명을 운동 그룹(36명)과 건강 교육 그룹(30명)으로 나눴다. 운동 그룹은 처음 4주간 강도를 서서히 올린 뒤, 이후 최대 심박수의 75% 수준에서 주 3~4회, 회당 30~40분의 유산소 운동을 실시했다. 운동은 걷기, 고정식 자전거, 트레드밀 중 최소 두 가지를 병행했다. 12개월 후 가정용 수면다원검사를 이틀 연속 실시해 수면 단계를 객관적으로 측정했다.

운동 그룹은 대조군에 비해 얕은 수면(1단계 수면)에 머무는 시간이 2.3%포인트 줄었다. 1단계 수면은 잠이 들기 시작하는 매우 얕은 단계로, 여기서 오래 머무르면 숙면이 안 된다는 뜻이다. 반면 안정적 수면(2단계 수면)에 머무는 시간은 3.2%포인트 늘었다. 수면 초반 3분의 1 구간에서 깨어난 횟수도 1회 줄었다. 자기 보고식 설문에서도 수면의 질이 개선되었다고 응답했다. 뇌파로 봐도, 설문으로 봐도, 걷기를 꾸준히 한 쪽의 잠이 더 깊어졌다.

이 두 연구만의 결과가 아니다. 2021년 Frontiers in Psychiatry에 발표된 메타분석에서 22개 무작위 대조 실험을 종합한 결과, 2개월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한 성인은 수면의 질(PSQI), 불면증 심각도(ISI), 주간 졸림(ESS) 세 지표 모두에서 유의미한 개선을 보였다. 걷기와 자전거 같은 중강도 유산소 운동의 효과가 두드러졌고, 3개월 이하의 단기 프로그램에서 오히려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왜 걸으면 잠이 잘 올까?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몇 가지 설명이 있다.

첫째, 체온 가설이다. 운동을 하면 근육 활동으로 체온이 올라간다. 운동이 끝나면 체온이 30~90분에 걸쳐 다시 떨어지는데, 이 하강이 뇌에 졸음 신호를 보낸다. 수면은 체온이 떨어지는 시점에 시작되는데, 존스 홉킨스 의대의 가말도 교수는 이 과정을 "운동 후 체온 하강이 따뜻한 샤워 후 나른해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설명했다.

둘째, 불안 감소다. 만성 불면증의 핵심 원인 중 하나가 '과각성(hyperarousal)'이다. 잠자리에 들어도 뇌가 흥분 상태를 유지하면서 잠이 오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규칙적인 걷기는 코르티솔 수치를 낮추고 불안을 줄여 이 과각성을 완화해 준다. 앞서 소개한 리드 연구에서 운동 그룹의 우울 점수가 함께 개선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셋째, 일주기 리듬의 안정화다. 낮에 신체 활동을 하면 야간 멜라토닌 분비가 앞당겨진다는 연구가 있다. 낮에 몸을 움직이면 "이제 밤이니 자야 한다"는 신호가 강화되는 것이다. 특히 야외에서 걷는 경우 햇빛 노출이 더해져 일주기 리듬이 더 안정된다.


그렇다면 언제 걸어야 수면에 가장 좋을까?

2025년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대규모 연구가 이 질문에 답을 줬다. 14,689명의 신체 활동 데이터와 수면 데이터를 생체 인식 장치로 1년간 추적한 것이다(총 약 400만 밤). 운동 강도와 운동 종료 시각을 조합해서 수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결과는 두 가지였다. 첫째, 잠자기 4시간 이전에 운동을 끝내면, 강도와 관계없이 수면에 부정적 영향이 없었다. 둘째, 잠자기 2시간 이내에 강한 운동을 하면 잠드는 시간이 늦어지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야간 심박수가 올라갔다. 운동 강도가 높을수록, 잠자기 시각에 가까울수록 영향이 컸다.

다만 여기서 "강한 운동"이 핵심이다. 가벼운 걷기는 이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 고강도 인터벌 운동이나 달리기처럼 심박수를 크게 올리는 운동이 문제였다. 편안한 속도의 10~15분 저녁 산책은 심박수를 크게 높이지 않으면서 체온을 소폭 올려, 오히려 이후의 체온 하강이 수면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준다. 별도의 메타분석에서도 중강도 이하의 저녁 운동은 수면을 방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깊은 수면 시간을 늘릴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다만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걷기의 수면 효과는 당일 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바론 연구팀이 리드 연구의 데이터를 다시 분석했다 (Journal of Clinical Sleep Medicine, 2013). 운동한 날 밤에 바로 잠이 잘 오는지를 날짜별로 추적한 것이다. 운동한 날 밤의 수면이 운동하지 않은 날 밤보다 특별히 좋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 방향의 관계가 나타났다. 전날 밤에 잘 잔 사람이 다음 날 운동을 더 잘 실행했다. 연구팀은 "운동과 수면의 관계는 양방향이며, 하루 단위가 아니라 수 주에 걸쳐 누적되는 효과"라고 설명했다. 오늘 걸었다고 오늘 밤 바로 잠이 잘 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2~4주 꾸준히 걸으면, 전반적인 수면의 질이 달라진다.

이 점은 수면제와의 결정적 차이이기도 하다. 수면제는 먹은 날 밤에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만, 의존성과 부작용이 따른다. 걷기는 효과가 느리지만, 부작용이 없고 지속적이다. 4.2에서 저녁 식사 후 걷기가 혈당을 잡아준다고 했다. 같은 10~15분의 저녁 산책이 혈당도 관리하고, 수 주에 걸쳐 수면의 질도 끌어올린다면, 저녁 식후 걷기의 가성비는 생각보다 높다.

잠이 안 올 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뒤척이거나, 핸드폰을 켜거나, 양을 세거나. 그런데 낮에 30분을 걷는 것만으로 밤의 질이 달라진다면, 시도해 볼 만하다. 안타깝게도 효과는 당장 오늘 밤이 아니라 다음 달에 올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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