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여행

아이를 품다 #1

by 채온

프롤로그


앞으로 발행될 글들은

모두 제가 18년 동안 기록한

블로그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2005년 생, 2007년 생 두 아들을 데리고

저는 이혼녀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현재는 2026년 2월.

두 아이는 각각 성인이 되어

저와 마주하고 있네요.

앞으로의 삶이 또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제 조심스럽게 꺼내 봅니다.

두 아이와 엄마의 이야기.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봄햇살처럼,

보랏빛 라일락 향기처럼 위안이 되면 좋겠습니다.



내게는 어여쁜 아이가 둘 있습니다.

이제 갓 25개월이 된 아이와

이제 막 백일을 넘긴 아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그 크고 맑은 눈을 뜬 채

나를 향해 서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하는 삶이라는

불분명한 시간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 채,

오로지 엄마와 아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의 큰 아이는 온전하게 태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몸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가 지금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너무나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 아이의 여린 살 위로

날카로운 메스가 스칠 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합니다.

이미 한 번 아픔을 치렀지만,

또다시 그 아픔을 감내해야 할

아이의 어린 마음이, 여린 살갗이, 떨리는 영혼이

너무나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엄마는 긴 여정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언제쯤 끝날 지 모르는

여행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이가 아프지 않을 때까지?

아이가 더 이상 엄마와 여행하기를 거부할 때까지?

그 끝은 엄마로서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이기에 강해져야 하므로

아이의 아픔을 아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므로

엄마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길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이 글은 두 아이를 둔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2007. 11. 16.




2026. 2. 12.


아마도 이때 나는 이미 이혼을 결심했을 것이다.

그래서 각오의 마음을 다지고 싶었나 보다.

지금은 만 나이로 생활하지만

그때는 한국 나이가 일반적일 때였다.

나는 서른셋에 결혼해서

서른넷에 첫째 H를 낳았다.

서른여섯의 여름에는 둘째 W를 낳았다.


당시만 해도 이혼과 이혼녀라는 사실이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뭔가 까탈스럽거나 문제가 많은 사람.

아니면 하다못해 팔자가 사나운 사람.

지금도 그런 시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말 많고 좁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그런 시선으로 눈에 띄고 싶지 않았다.


이혼을 결정하면서

홀몸으로 아들 둘을 키워야 한다는 부담은

생각보다 적지 않았다.

특히 큰 애는 선천성기형으로

언제 장애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그 심적 부담이 훨씬 컸다.

하지만 나는 서른여섯의 나이에

그저 턱없이 좋았다.

이제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과

두 아이를 오롯이 키울 수 있다는 확신.


나이만 먹고 공부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나는

지금 생각해도 참 철이 없었다.

두 아이의 웃는 얼굴을 보고 같이 웃었다.

헤헤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웃음만으로 충분하다고.


중요한 건

여전히 나는 지금도 철이 없고

여전히 그 웃음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어차피 삶의 의미는 단 하나만으로도 꽃이 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