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다 #2
지하철 5호선과 택시를 타고 찾은
S대 어린이 병원.
익히 알고 있는 길임에도
아들과 함께 하는 첫 길이라,
예약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정오.... 출발.
병원에 도착하니 오후 1시 10분.
소견서도 없이 접수를 했지만,
데스크의 여자는
다음번에 소견서를 가져오라며
의료보험을 적용해 주었다.
두터운 점퍼에 털모자와 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했던 아이는 갑갑한지, 자꾸만
찬 바람이 부는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오늘은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다.
게다가 아이는 지금 한 달째 계속된 감기로
천식과 폐렴 초기의 상태에 놓여 있어
나로 하여금 잔뜩 겁을 집어먹게 한 상태이다.
1층에 위치한 소아신경외과.
복도 양쪽으로 진료과들이 위치해 있고,
가운데는 방문객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온통 아이들과 부모들로 북적거리는 한가운데서
아이와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회성이 뛰어난 아이는
금세 옆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기 또래의 여자아이와 즐거운 놀이를 한다.
요즘 H는 친구들과 안고, 악수하고,
손잡고 걷기를 좋아한다.
H보다 머리 하나는 거뜬히 커 보이는 여자아이는
같은 나이인데도 정말 키와 덩치가 어마어마하다.
"팔 개월 빠른데 제법 많이 크네요."
여자아이의 엄마에게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 같으면 아들이 또래보다 작다고
마음 상했을 텐데...
오늘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지금 키가 중요한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게 중요하지.
그러면서 스스로 위안했다.
신경외과 앞에는
곧 A4 크기의 종이가 하나 붙었다.
응급환자로 인해서 외래 접수자들의 대기시간이
길어질 예정이니 양해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2시 예약자였던 아들은 3시가 되어서야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아들이 뛰고 장난쳤던 광경들.
그나마 지금 건강하게 웃고 뛰면서
생활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소견서와 MRI 사진 한 장 없이 진료를 청했지만
선생님은 자상하고도 차분하게
아이를 면밀히 보아주셨다.
척수수막류...
2년 전에는 너무나 생소했던 이 병명을
나는 지금은 태연하게 입에 올린다.
선생님은 의아한 얼굴로
나와 아이를 번갈아 바라본다.
어떻게 아이가 이렇게
아무런 증상 없이 건강하지? 되묻는다.
P대학병원에서 다음 달에 수술을 해야 할 아이.
태어나자마자 1차 수술을 했고
이제 2차 수술을 앞두고 있다.
친정에 내려가 아들을 낳았고
서울까지 올라오지 못해 결국
P대학병원에서 첫 수술을 했다.
이 병의 권위자로 유명하신 선생님은
S대와 Y대에 두 분 계신다.
2차 수술을 앞두고 불안감이 컸다.
신경은 한 번 손상되면 복구가 힘들다.
이 수술이 아이를 성하게 만들지 아닐지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결국은 힘든 발걸음을 한 것이다.
S대 선생님은 P대 쪽의 MRI를 보고
자신의 진단을 이야기해 주겠다고 하셨다.
다음번 외래를 기약할 밖에....
돌아오는 길.
잠든 아이를 안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걷고 또 걷는다.
오늘 내가 걸은 이 길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길이다.
그런데 정작 앞으로 이 아이를 안고
걸어가야 할 길은 얼마나 될까.
아이를 품에 안고,
두 팔은 저려서 끊어질 듯한데
허리는 뻣뻣해져 무릎까지 뻗치는데
그런데도
이제는 정말 아이를 안고 걷는 이 길이
그리 힘들지 않다.
대신 아파줄 수 없는 엄마는
언제라도 좋으니 제발...
아이가 건강해지기를 바라며
그런 날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끊임없이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두 발에 피가 맺히더라도.
2007. 11. 20.
2026. 2. 13.
그날 저녁, 아이의 아빠가 화를 냈었다.
까짓 2차 수술 안 하면 되는데
왜 굳이 S대 병원까지 다녀왔냐고
나를 질책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말없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1차 수술 이후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을 해왔고,
이미 지난 검사에서 신경 결박이 보이니
미리 예방적 차원에서라도
수술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었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수술 없이도 아이의 건강한 미래가 보장되는가.
여기 S대 병원에서 확인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아이는 지금 잘 걷고, 대소변도 잘 본다.
그러니 지금은 괜찮다. 하지만 미래는?
나의 물음에 그는 밤새 짜증을 냈다.
아이에게 장애가 발생할까 걱정인지
수술비가 걱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식어버린 내 마음에 그의 말은
어떤 의미도 갖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