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다 #3
내게 엽산은 한이 많은 이름이다.
첫 임신을 준비하면서
나는 너무나도 무지하였다.
원래도 술, 담배를 하지 않지만
몸에 나쁜 음식만 가리면 되는 줄 알았다.
예쁜 생각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인스턴트 음식도 즐기지 않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고
많이 걷고 산책하길 좋아해서
전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첫 아이가 나에게 왔을때 그때의 아득함이란...
의사는 그저 엽산 부족이 원인일 것이라 말했다.
혹은 환경 호르몬일 수도. 윗대의 유전일 수도.
무엇도 확언할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어떤 이유.
그래도 의학적으로 따지자면 엽산 부족의 가능성.
보통의 성인에게 아주 미량 필요한 엽산은
임산부에게는 좀 더 많은 양이 필요하고,
임신 3개월전부터 아주 중요하게
대사 작용을 한다.
신경관 결손의 1차적 원인은
엽산의 부족에 기인한다.
신경관 결손을 안고 태어난 H는
엉덩이 윗 부분의 피부가 개방되어 있었다.
개방된 부위로는 척수신경이 노출되어 있어서
그 손상 정도에 따라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정형외과적인 보행 장애,
비뇨기적으로 대소변 장애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의사가 보여준 사진 속 H의 엉덩이 윗부분에는
갓난아기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커다란 혹이 달려 있었다.
바로 눕지도 못하고 온갖 줄에 매달려
신생아 중환자실에 엎드려 있는 아기.
2.9kg의 작은 생명체는 간신히
호흡만 하고 있었다.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돌아온 날 밤,
산후조리원 단칸 방에서
나는 한숨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울고 또 울었다.
울다가 까무러치고
다시 눈을 뜨면 눈이 짓무르도록 울었다.
그때의 나는 죄인이었다.
아이에게 말 못할 고통을 안겨 준 어미.
건강하게 아이를 낳지 못한 멍청한 어미.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아이를 아프게 한 부족한 어미.
어느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알고 있었다.
나는 한참은 두들겨 패야 할,
스스로를 짓밟고 싶은 엄청난 죄인이었다.
출생 열흘만에 수술을 하고,
출생 한 달만에 엄마 품에 안길 수 있었던 아이.
나는 아이의 수술 자국을 볼 때마다
항상 건강하기를,
다시 재수술을 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2년 동안 나는
축복받은 삶을 누린 셈이다.
아이는 아무런 장애 없이
엄마에게 기쁨과 웃음을 안겨주고 있으니 말이다.
힘차게 내뻗은 발과 응!응! 하면서 대변 보는 모습,
쉬! 쉬! 하면서 소변 보는 아이를 보면서
이런 당연한 행위를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아이는 지금 두번 째 수술을 앞두고 있다.
지금은 너무나 건강하지만,
앞으로 장애가 발생할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수술은 예방적 차원에서 실시되는 것이다.
가능한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지금의 수술을 피할 수 없다면
수술의 결과가 최고이기를,
그 이후에 예후가 좋기를 바라는 것 밖에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누군가, 혹은 TV에서 엽산을 거론하면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
내게는 엽산과 관련한 너무 아픈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여쁜 이십대의 아가씨들을 보노라면,
가임기의 젊은 여성들을 보노라면
주저없이 그들의 손을 붙들고 꼭 말하고 싶다.
엽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2007. 11. 23.
2026. 2. 14.
이날의 블로그는 새벽 2시에 기록되어 있다.
H의 수술을 앞두고 많이 심란했나 보다.
그즈음 나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남편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아이의 수술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둘째는 둘째대로 떨어져서
부산 친정에서 자라고 있었다.
2006년 3월부터 강의를 나가고 있었다.
2007년 11월 이때는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내가 무슨 정신으로 살았을까 싶다.
2007년 8월 초에 W를 낳고
두 달이 되도록 몸이 아물지 않았다.
결국 9월 말에 둘째를 친정에 내려보냈다.
도무지 아이를 봐주지 않는 사람.
퇴근하고 나면 그저 큰 아이하고만 놀았다.
그러면 내가 꼼짝할 수 없었다.
저녁도 해야 하고, 아이도 씻겨야 하고
집안일을 해야만 하는데.
왜 둘째는 봐 주지 않았던 걸까.
그때 물었었다. 왜 그러냐고.
그가 대답했다.
실감이 나지 않아.
내가 두 아이의 아빠라는 게.
걔는 너무 어리니 네가 봐야지.
언제는 건강한 아이를 낳지 못했다고
그러더니
건강한 아이를 낳아 놓으니
본척만척한다.
둘째를 친정에 보냈더니
쟤 애도 보지 못하는 여자라고
원망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리고 그도 어렸다.
우리는 나이만 먹고
부모가 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때는 원망했지만 지금은 미안하다.
그도 참, 힘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