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나를 빚는다.

부모와 타인을 설거지하다.

by Seriel J

노란 병아리 같은 스펀지 수세미에 주방 세제를 꽥꽥 눌러 묻힌다.
설거지를 시작한다.
그릇에 적힌 글자가 지워진다.
'부모'

'너 행복해?'
잔인하게 난도질하는 질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행복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다시금 행복을 꺼내는 질문이겠지만 행복과 거리가 먼 사람에게는 인생의 페이지를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행복하다고 느낀 구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학대가 남긴 자욱은 거리를 두고 시간이 덮으면 옅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신적 돌덩이는 그리 쉽게 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짓이겼다.
나의 부모는 상처에 딱지가 생길 때쯤이면 다시 새로운 칼로 그 상처를 파헤쳤다.
설거지가 필요했다.
부모를 비우는 설거지.

설거지거리들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셀 수 없는 육두문자, 인신을 모독하는 글자들, 비교의 곰팡이, 1등의 압박, 학대의 연장들.
역겹고도 끈적하게 들러붙은 이것들은 쉽사리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떨어질 생각이 없으면 가만히라도 있을 것이지 요리조리 나를 지배한다.
문득 깨닫는다. 이것들은 내 것이 아니다는 것을.
꽥꽥거리는 주방 세제에 괜히 신경질이 난다.
빨래 빨듯 물에 담가 미친 듯이 헹군다.
분노를 분노로 씻어낸다.
사방팔방 물이 튀기고 옷이 젖어도 정작 나는 가벼워진다.
재밌는가? 재밌는 것 같다.
이게 웃음이었나? 그런 것 같다.
잃어버린 맑은 웃음이 잔잔히 스며들듯 다가온다.
철-컥.
새로운 문이 열린다.
'행복'의 문.

뻐걱거리는 문의 손잡이를 잡는다.
눈을 감고 묵상하며 질문을 한다.
'정녕 제가 들어가도 되는 문입니까?'
백야에서 내리쬐는 빛은 답이 없다.
용기의 첫걸음마를 뗀다.

백야.
내가 발을 들은 백야에는 소중한 얼굴들이 있다.

커피 한 방울 마시지 않는 무뚝뚝한 남편은 냉장고에 라테를 꾸역꾸역 채워 넣고 있다. 잠을 깬 나는 냉장고 문을 연다. 가득 채워진 카페 라테를 보고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다.
'맞아, 잊고 있었구나! 이렇게 우울의 치유가 시작되었지.'

깻잎 하나에 회를 세네 점씩 얹고 쌈장 톡, 알싸한 마늘 톡, 맵싹한 고추 하나 얹고 동글동글 말아 내 입에 넣어주는 시엄마. 부모와 정이 없는 나를 위해 고부가 아닌 엄마가 되어주신 분.
배추 도사, 무 도사처럼 허허 웃으며 보고 계시는 시아빠.

형수를 위해 카페라테를 종류별로 사서 집에 놀러 오는 시동생. 나의 남동생.

심야 술잔을 기울여주던 친구들의 얼굴.

그리고 나의 보석, Stella.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감정을 배우면 이런 기분일까.
잃어버린 감정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맑았던 웃음은 까꿍놀이와 함께 요란스럽게 존재감을 알린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물처럼 내게 오는 벅찬 감정들에 환희의 별이 총총총 흐른다.
환희의 끝에 누군가가 서있다.
두 팔을 벌리고 내게 말한다.
"기다렸어! 언니도 참. 오래도 걸렸구나!"
양갈래 머리를 한 꼬마.
마지막 행복을 느끼고 맑게 웃던 어린 시절의 나.
꼬마에게 다가가 큰 품으로 안아준다.
"많이 아팠지?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괜찮아. 오히려 언니가 언제 올까 설렜어."
"미안해."
"언니, 이제 우리는 하나야. 어서 나를 안고 잃어버린 행복과 웃음을 다시 찾아가! 내가 엄청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어!"
"응! 이제 우리는 하나야!"
"언니, 이제 행복해?"
"아직 낯설지만 분명 그럴 거야!"

내려놓으시라.
그릇을 비우시라.
행복의 선명도를 높이고 싶다면 그리하시라.

그래야 산다.
그래야 숨을 쉰다.

이제 안다.
내 행복은 타인에게서 오지 않으며
타인이 주는 기대가 아니다.
타인에게 받는 인정도 아니다.

그릇을 빚는 나의 손길에서 비롯된다.
빚으시라.
당신이라는 그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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