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소란

경이로움에서 비롯된 경외감은 승화를 일으켰다.

by Seriel J

그는 아주 조용히 내 인생의 반열에 올랐다.
그와 나의 간격은 우리를 둘러싼 건물만큼이나 길고도 멀었다.
큰 사건도, 계기도 없이 조용히 소란해졌다.
그의 눈에 나의 어떤 모습이 머물렀을까.
그 모습은 애처로움이었을까.
시선은 소란해졌고 소란이 길어지면서 나의 마음도 소란을 따라갔다.

그는 늘 높은 곳에 올라 빛을 낸다.
그가 걸친 모든 것들, 그가 뱉는 모든 말들은 축복이라 일컬었다.
늘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흔들리는 구석이 없이 그저 그 자리를 묵묵하게 지키는 사람이다.
그의 다정함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따뜻한 말과 경청은 누구에게나 은혜로이 베풀어졌다.

열려있는 은혜로움이 천천히 그리고 잔잔하게 가랑비 바지 젖듯 내 마음을 두드렸다.
그 두드림은 아주 자연스러워서 쥐도 새도 모르게 소란이 되었다.
그 마음을 정의 내려볼까 하니 형용하기 어려웠다.
그것은 경이로움에서 출발한 경외감이었다.

시선.
늘 머무르는 시선이 있다.
길지 않아서, 그저 잠시 스쳐갈 뿐이다.
그 짧음이 빈번하게 반복되었다.
나의 냉담함은 그 잠깐의 머무름에 봄비에 눈이 녹듯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다.

그의 걸음은 한 두 보쯤 물러나는 걸음이다.
머물러 있지만 모든 이들과 한 두 보쯤 거리를 둔다.
피하지는 않지만 조용한 쉼을 두는 사람.
그것은 밀어냄이 아닌 선을 지키려는 선택이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고
가까워질 수 없다는 마음이 있다.
호기심과 냉담함이 충돌하며 감정과 태도의 모양이 다소 비뚤비뚤 까막눈의 글씨가 되었다.

호기심과 냉담함의 충돌.
사제의 길을 걷고 계심에 대한 부러움.
부정하지 않고 조용히 인정했다.
언젠가부터 들리던 마음의 소란은 증명해 줬다.
내가 아직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 또한 사제만큼이나 경건한 길을 걷게 될 것을.

닿을 듯 말 듯.
머무르지만 머무르지 않는.
조용하지만 소란스러운.
그가 바라보고 서 있는 그 방향을 묵묵히 함께 바라본다.

하루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에게 시간을 돌릴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조금 더 일찍 묵상할 수 있었다면 하는 생각.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길을 걷는 사제의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처절한 고립과 고독 속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쓰고 싶다.
차갑기 그지없는 독방은 위대한 문자와 역사를 남길지도.

닿을 듯 말 듯.
머무르지만 머무르지 않는.
조용하지만 소란스러운.

이제는 안다.
이 소란은 완성될 수 없다.
완성될 수 없기에 멈출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묵주를 쥐고 다시 묵상한다.
이 경이로움에서 비롯된 경외감이
나 또한 사제로 만들어주길.
나 또한 사제로 받아들여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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