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꽃만 피울 것이지 바람은 왜 피우나 몰라.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풍문으로 불륜 소식을 종종 접한다.
"들었어? 그 집 남자 노래방 문턱이 닳도록 들락날락하나 봐. 얼굴이 반질반질하더라니."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사실이 아니면 어쩌려고 그래. 그런 말 하고 다니지 말어. 그러다가 큰일 나."
"본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 돌겠지. 암시롱 없는 굴뚝에 연기 나겠어?"
"그래도 이 이야기는 여기를 마지막으로 하고 다른 곳에서는 흘리지 말어."
"혼자 너무 심각하게 반응하는 거 아냐?"
"심각하긴. 걱정돼서 그러지. 다른 이야기하자."
한 다리 건너 바람 부는 집들 때문에 현정의 소문난 우체통도 바람 잘 날이 없다.
불륜은 곧 성욕의 지배라고 생각한다.
본능과 이성이 공존하다가 최고의 충동을 넘어서지 못해 본능이 컨트롤이 되지 않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균열이다.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큰 균열이다.
절대 쉽게 보아서는 안된다.
이성을 잃은 본능의 결말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결국 삶의 끄트머리에 서있는 것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가 결국 붕괴의 과정을 거친다.
붕괴한 삶은 회복하기 힘들다. 회복에 있어 무수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된다.
종교에서는 이를 간음죄로 일컫는다.
이는 결코 육체적 쾌락을 좇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신뢰의 배도는 인간과 관계의 파괴를 초래한다.
끝은 결국 폐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라는 말이 있다.
정말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다.
그들은 스스로 사랑이라 일컫는다.
욕망에 지배당한 감정에게 '사랑'이라는 표현은 합리화를 위한 수단이요, 도구다.
사랑. 사랑이 무엇인가 묻거든 현정 또한 또렷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현정은 부모로부터 받는 원초적인 혹은 1차적인 사랑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이라 사랑의 본질을 완숙히 해석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다.
책임, 희생, 존중이 어우러지는 하모니.
그쯤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
불륜은 바탕색으로 사랑을 범벅해 두었을 뿐 그 내면에는 인간이 수단과 도구화로 전락, 성스러운 행위가 하나의 쾌락으로 전락, 신뢰를 향한 배도가 존재한다.
폐허다.
숨소리조차 남지 않을 폐허다.
간음은 결국 반복되지 않을까?
본능이 부정적으로 변질된 쾌락에 지배되는 삶은 절대적으로 주체적일 수 없다.
쾌락의 그릇이 채워질수록 터져 나오는 도파민은 인간을 '지성인'이라는 용어에서 멀어지게 만들 것이다.
스스로가 채운 족쇄. 스스로가 허용한 선은 한 번 넘기가 어렵지 반복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반복의 늪은 결국 타락의 폐허로 인도한다.
더 칠흑 같고 캐캐묵은 폐허에서 껍데기만 인간일 뿐 몸과 마음은 버려진 쓰레기에 불과한 삶을 이행한다.
인간의 삶은 무수히 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성스러운 행위에 본능의 욕심이 더해지니 죄가 성립한다.
그로 인해 인간은 비로소 자유를 잃는다.
잘못된 선택이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회개와 절제의 삶을 사시라.
회개는 가능성이다.
묵상을 하며 자기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시라.
성찰이라 일컫는다.
왜 이런 선택을 하여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웠을까.
왜 나는 진정으로 나를 아끼지 못해 미성숙한 판단에 이르렀을까.
원래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괴롭다.
하지만 건강한 삶의 영위는 성찰에서 시작한다.
진실된 성찰을 비롯한 회개는 족쇄의 열쇠이다.
실수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인간이다.
실수를 선택했다면 돌이킬 수도 있어야 인간이다.
폐허의 길에 머무를 수 없지 않은가.
그 길을 다시 되돌아 오시라.
아직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