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뭐해요?'
'이모 수업하고 있지. 예나는 뭐 해?'
'저는 새로 산 소파에 앉아 있어요.'
'오! 소파를 샀어? 너무 좋겠다.'
'무슨 색이야?'
'베이지 색이요.'
'베이지? 예쁘겠다.'
'네'
끝.
조막만 한 것이 이제 갓 핀 고사리로 카톡을 보낸다.
예나를 만난 것은 정확히 5년 전.
흰 우유 같은 것이 똘롱똘롱 가방을 메고 잉잉거리며 어린이집에 온다.
성질이 나서 거북이 등처럼 들고 온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운다.
"세상에. 가방 아야 하겠어요."
나는 일곱 살 아이들 선생님.
예나의 오빠 연우의 담임 선생님이다.
선생님의 농담이 불편했던 예나는 마스크 너머로 눈을 네모로 뜨고 신기한 선생님을 관찰한다.
현정에게 말은 걸지 않고 한참을 관찰한다.
그런 예나가 귀여워서 살포시 안아본다.
흰 우유 같은 것이 심지어 말랑말랑하고 포슬거리는 비누향도 난다.
귀엽다.
'귀엽다.'라는 표현은 누가 지어냈을까.
'귀요미'라는 표현은 1970년 동아일보에 2부작으로 연재된 김승옥의 단편소설 <50년 후 Dπ9(디파이나인) 기자의 어느 날>에 등장하는 자동차 이름 <GUIYOMI19>로 처음 등장한다.
이 두 가지 표현을 좋아한다.
인간으로 태어나 제일 사랑스러운 시기에 갖다 붙이기에 아주 적합하다.
마스크 너머로 네모눈을 뜨고 선생님을 관찰하던 흰 우유가 어느덧 의젓한 초등학생이 되고 핸드폰이 생기자마자 카톡을 보낸다.
어찌하여 제자였던 연우보다 더 가깝다.
어떨 때는 예나가 제자였던 것 같다.
현정은 다짐한다. 연우가 들으면 분명 서운할지라 이 내용은 절대 금기사항으로 보여주지 말아야겠다고.
어느 날, 밀도 높은 업무와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현정의 '뇌 스위치'를 꺼버렸다.
현정은 주말도 어김없이 나가서 부수적인 업무를 하였기에 늘 하던 대로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의 차가운 은색 버튼을 누른 뒤 기억이 지워졌다.
의식이 돌아와 눈을 뜨니, 많은 인파와 구급 대원이 현정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뒤, 현정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의 10년 넘는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지금은 영어로 거듭난 새로운 선생님이 되었다.
예나와 연우의 어머니와는 이제 이웃이 되어 '언니 동생' 하며 지낸다.
함께 밥도 먹고 커피도 한 잔 한다.
오늘은 유난히 예나가 애교 섞인 소리를 낸다.
"예나 시선에 집중!"
혀 짧은 소리를 내며 다가와 본인만 보라고 말을 건넨다.
그렇게 시작된 흰 우유의 순회공연은 정지 버튼 없이 흘러간다.
갓 피어난 고사리가 작은 용기를 내고 작은 선택을 하며 하루하루 성장한다.
현정은 그저 볼을 어루만져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넘어지면 무릎을 털어준다.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아이들은 예측불허 호기심 대장들이다.
세상을 보고 세상을 배우고 싶은 눈들의 반짝임은 국적을 떠나 동일할 것이다.
그 순수함을 지켜주는 직업이 선생님이 아닐까.
완숙하지 않아도 된다.
틀려도 괜찮다.
느려도 괜찮다.
'괜찮다' 노래 부르며 아이들의 '낮엄마'가 되는 직업이 선생님이 아닐까.
추억이 많다.
몰래 챙겨 와서 우리 반끼리만 노나 먹던 과일과 과자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의 인간 비행기.
교실에 뒹굴며 치던 장난들.
교실에 가득했던 떠들썩한 웃음들.
이 추억들은 현정에게는 힘든 날이 오면 꺼내먹는 초콜릿이다.
겨울철 핫팩 같은 추억이다.
오히려 배웠다.
순수하게 위로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실패하고 아파도 씩씩하게 일어나는 용기를.
교실 문을 여는 아이들의 해님 같은 얼굴을.
새 아침 설레는 새 마음을.
따뜻하다.
이 따뜻함의 이름은 사랑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랑이 결핍된 이가 오히려 사랑이 넘쳐난다.
아이들이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배우며 하루를 연다.
그 배움의 보답은,
아이들의 하루에 빛 한 스푼, 행복 한 스푼을 얹는 것.
현정은 그렇게 오늘도 새 아침 새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