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독후감 11. 꼭 뭔가 증명하고 설명해야만 하는 걸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3)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눅 4:18)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 6:20)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막 10:21)
"가난한 과부는 다른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 12:43)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눅 14:13)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이 땅에서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을 마주하는 날,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하나님이 주신 계명 잘 지키고, 남들 못 살게 굴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많이 도우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제 일에 최선을 다 했고, 그래서 작게나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애썼습니다.”라고 할 수 있다면, 비교적 괜찮은 삶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제대로 생각을 정리해본 적은 없지만, 막연하게나마 대략 저런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긴 하다. 물론 지금은 좀 부족하지만 앞으로 언젠가, 좀 여유가 생긴다면 저 정도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을 채워야겠다는 계획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어느 땐가, 복음서를 읽다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자주 만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그저 ‘그들을 도우며, 착하게 살아라’는 뜻을 넘어서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
가난한 자. 작은 자. 굶주린 자. 초대받지 못한 자. 그런 표현들은 엄청나게 자주 등장했고, 또 조금씩 다르게 조금은 심오하고 복잡하게 전개됐다. 예수 사역의 시작에도, 사람들을 깨우치는 비유 속에도, 마지막 심판의 장면에도 그들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할 때마다 늘 비슷한 자리에 서 계셨고 또 비슷한 자리에 가난한 자들을 세우셨다.
율법을 지키며 선하게 살면서 성공을 거둔, 부자 청년에게는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라고 하셨다. 물론 그것이 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고, 그 고비를 넘지 못한 청년은 천국에 이르는 길을 찾지 못한 채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서야 했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하고 일에서 성공하는 일보다, 가진 것에 발목 잡히지 않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서는 삶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잔치의 주인에게는 가난한 자를 초대하라고 하셨다. 잔치란 많은 돈이 드는 이벤트고,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은 직접 ‘부조’를 해서 돕거나 혹은 다음 번에 자신도 잔치를 열어 갚는 것이 암묵적인 의무다. 내가 결혼식에 가지 않았던 친구에게 청첩장을 보내려면 주저되는 것이 당연하고, 내가 5만원 부조했던 이웃에게 10만원의 부조금을 받게 되면 마음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가난한 자는, 부조금을 내거나 다음 번에 잔치를 열 능력이 없다. 그런 이를 초대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삶의 방식이다. 계산해서 거래하려 하지 말고, 필요한 이웃을 살피고 나누는 것이 그 분의 가르침이다.
마지막 날의 심판에서는 작은 자에게 한 일이 곧 자신에게 한 일이라 하셨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늘 작은 자의 자리에 계시겠다는 선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니까 가장 작고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을 향해 아무 조건도 보답도 혹은 보람도 없이 다가가서 함께 먹고 마시며 서로 가진 것을 나누어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곳이다.
예수는 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기를 즐기셨기에, 그의 말씀을 듣는 이들 중에서도 태반은 가난한 이들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의 뜻이 ‘가난한 이들을 돕는, 착한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면 그런 말씀은 간혹 부자들을 만날 때만 가려서 꺼냈을 것이다. 혹은 ‘열심히 일해서 성공하고 돈도 많이 번 다음, 너희의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선을 베풀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부자에게든 가난한 자에게든, 높은 이든 낮은 이든, 누구나 더 낮은 곳을 바라보라고 가르쳤다. 높은 자에게 따라오는 안락과 힘과 존중, 낮은 자에게 따라붙는 불편과 무기력과 무시 따위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조금도 의미 없는 것들임을 깨달으라는 가르침이다.
나는 이렇게 기도하며 살아왔다. 조금 더 안정되기를, 조금 덜 불안하기를, 조금 더 인정받기를. 그리고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조금 더 큰 힘과 많은 것을 가지고, 그럼으로써 가난하고 작은 자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게 되기를.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읽힌다. “굳이 그렇게 애쓸 것 없다. 높이 올라간 다음 뭔가 던져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네가 선 곳에서 함께 하면 된다. 중요한 건 네가 얼마나 해냈느냐가 아니라, 누구 곁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마주할 하나님 앞에서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저는 특별히 해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삶을, 이웃들과 함께 풍성하게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그 사랑을 느끼고 또 흉내내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참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은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하나님, 제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당신이 사랑하신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함께 사랑하려고 했습니다. 많이 부족했지만, 그 과정이 참 기뻤습니다. 당신 안에 사는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뭔가 보고하고 성과를 자랑해야 한다는 부담을 벗고, 그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듬뿍 누렸음을 감사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쁨은 ‘내가 떳떳하다’는 안도감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기쁨일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신앙생활은 오히려 가벼워진다. 증명해야 할 삶이 아니라 누리고 즐기고 흘려보내는 삶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는 질문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가? 하나님이 알려주신 자리로, 다가서고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