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더 좋은 주인이 되고 싶게 해 - 05
영리한 강아지가 내 말을 잘 들을 거라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지능이 높을수록 원치 않는 것은 귀신같이 피하고, 제 하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간을 보는 것이 여우가 따로 없다.
그럼에도 하쿠는 지능에 비해 정말 착한 편이다. 하쿠의 착한 점을 꼽자면 끝이 없지만, 요새 유달리 착해진 녀석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반려동물을 길러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수도 있지만 내가 소유한 동물이라고 해서 인간의 권위가 들어먹히지는 않는다. 고양이 집사, 강아지 집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집을 동물’님’에게 바칠 뿐, 그들은 그들 멋대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하쿠는 발 닦이기, 양치질, 털 빗기기, 발톱 깎기 등 보통 강아지들이 싫어할 법한 웬만한 것들을 잘 참고 받아들인다. 착한 녀석에게 잔뜩 익숙해져 다른 강아지들도 그렇겠거니 했다가 칫솔을 대기만 했는데도 콱 물렸다는 견주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새삼 하쿠에게 고마워진다.
개의 본능을 통제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그들은 맡고 싶을 때 킁킁대고, 먹고 싶을 때 입을 쩍 벌린다. 그렇지만 하쿠는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많음에도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가만히 있고, 기다리라고 하면 한참을 기다린다.
이런 성질 덕분에 육견 난이도가 상당히 낮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끼융대면서 소심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일이 늘기는 했지만, 간식(보상) 없이도 앉으라면 앉고 가라면 가고 손 달라면 손을 순순히 주는 강아지는 흔하지 않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부러움 섞인 칭찬이 가끔 들려오는 건 덤.
개가 감히 밥투정을?! 하는 이야기는 옛날이다. 프리미엄 사료부터 밥꾸가 유행하는 요즘, 강아지들은 간식 가리기부터 바삭하지 않은 사료는 거부하기까지 다양하게 본인의 입맛을 주장하고 있다. 그 와중에 개로서의 전통을 지키며 주는대로 먹는 녀석을 어찌 착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워낙 장이 약해 내가 선별해서 주는 일은 있어도, 한번 내려놓은 그릇은 싹싹 비우고 약까지 군말 없이 핥아먹는 하쿠. 네 개에 이천 원 하는 저렴이 당근을 삶아 주면 파인다이닝이라도 온 것처럼 꼬리를 치며 기대감에 부푼 눈빛을 보여주니 주인으로서는 고맙기 그지없다.
정말 개가 바라는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럼에도 인간과의 공존을 위해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하고 저지레 한 번 할 것도 눌러담으니 주인 입장에서는 애틋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강아지냐, 하면 당연히 그것도 아니다. 나가자고 보채지는 않지만 나가서는 쟁기를 끄는 소처럼 산책 줄을 팽팽히 당기고, 기다리라고 해도 정말로 제 눈 돌아가는 일이 있으면 벌떡 일어나 설친다.
일등으로 착한 강아지도, 일등으로 똑똑한 강아지도 아니지만 그래도 반쯤은 육각형을 채우고 있다 할 법한 강아지. 이런 강아지가 나에게 왔다는 것이 가끔 신기하면서도, 너무 익숙해져 먼 미래에 다른 강아지를 기르게 된다면 호되게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상상도 한다.
심장 초음파를 받느라 북 밀린 하쿠의 가슴팍이 잠결에 천천히 오르내린다. 아픈 강아지가 착하기까지 하면 어떡하니. 내일은 한 번 더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산책을 나가야지, 마음 먹으며 착한 강아지가 좋은 꿈을 꾸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