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대형견 견주로 살아남기 - 05
아니, 강아지는 무료다. 입양 당시에는 오히려 유기견 보호소에서 이런저런 물품과 지원을 잔뜩 받아 왔었다. 문제는 그 후다. 이 녀석 앞으로 들어간 병원비가 지금까지 오백은 족히 넘을 것이다. 거기다 오늘은 못해도 천만 원이 예상된다는 질병 진단을 받고 오는 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의 강아지 하쿠는 예전부터 심장에서 진동 소리가 났었다. 알아보니 심잡음이라고 불리는 것이었는데, 이제까지 다닌 병원들에서는 경과를 지켜보자는 소견을 받아 당장 문제 삼지는 않고 있었다. 신경을 쓰고 싶어도 당시 강아지에게 다른 잔병치레가 너무 많아 그걸 고치는 데에 급급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하쿠가 두 살 반이 넘어갈 무렵부터 허구한 날 달고 살던 설사와 감기가 잦아들었다. 더이상 병원 문턱을 넘지 않아도 되나 싶어 잠시 행복했었는데, 이번에는 절뚝대는 걸음걸이 탓에 대치동의 한 병원을 예약하게 되었다.
꼬박 한 시간이 넘게 진정제까지 먹고 진행한 외과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 대신에 심장 청진 결과가 의심스러워 혈액검사를 추가 진행했다고 했다. 선천적인 심장 문제가 예상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20만 원이 더 찍힌 영수증을 받아든 기분은 솔직히 유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손가락은 어쩔 도리 없이 움직여 유명한 심장 전문 병원에 진료 대기를 걸어 두었다. 그리고 문득 이사한 동네에서 편하게 갈 만한 병원을 찾고 싶어진 것이 오늘이었다.
그리고 바로 옆 골목에 심장 전공의가 연 병원이 있다는 게 아닌가. 거기다가 동물병원에 보기 드문 오픈 할인 이벤트까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곧장 하쿠를 데려가 심장 초음파를 맡겼다. 아무 일도 아니라면 좋았겠지만, 하쿠는 동맥관개존증(PDA) 진단을 받게 되었다.
혈관에 문제가 있는 선천성 질환이다보니 펫숍에서는 증상이 발견된 개체를 ‘도태시킨다’고 하더라. 그래서 하쿠가 거리를 떠돌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다행히 하쿠는 병증이 심하지 않아 약을 먹지 않아도 되고, 이 병은 수술 시 완치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수의사가 말을 아꼈다. 비싸다는 뜻이다. 한 700만 원 하나? 700만 원이었다, ‘소형견’ 기준. 대형견인 하쿠는 천만 원 정도는 각오해야 한단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수술이 가능한 큰 병원을 소개해줄 테니 연락을 달라는 이야기를 뒤로 하고 병원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해맑은 강아지를 보고 착잡한 심경이 되었다. 얼마 전 이사한지라 지출도 많았고, 지금까지 병원비로 적게 쓴 것도 아닌데 또 적잖은 돈을 들여 수술을 할 생각을 하니 우선 머리가 아팠다. 때문에 수술을 하지 않은 채 증상 발현의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보호자들도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까 병원에서 만난 어린 강아지랑 인사를 못 하게 했다며 툴툴대는, 아무 것도 모르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몇 번의 검색을 했다. 몸에 문제가 없을 리 없다는 예상을 어느 정도 해서인지 병이 있다는 사실에도 비교적 담담했고, 오히려 병명을 정확히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후 1년 내에 치사율이 70%에 달한다는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도 30%의 확률로 살아남은, 생명력 강한 사나이. 울컥대는 심장을 안고서도 씩씩하게 자란 나의 강아지 하쿠. 어찌 보면 지금까지 탈 없이 살아온 것도 참으로 대견하다.
앞으로 알아봐야 할 것도, 벌어야 할 것도 많지만 네가 튼튼한 심장을 가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강해진 건지,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미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무사히 완치해서 당당하게 천 만원 넘는 강아지라 불려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