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4-7장
어떤 날은 누군가의 사소한 몸짓 하나가 유독 가시처럼 박힌다.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타인의 위선이 그날따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마음속으로 날카로운 정죄를 퍼붓곤 한다. 특히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의 '가식'이다.
카페 옆자리, 방금까지 세상 둘도 없는 절친처럼 깔깔대며 시댁이며 남편 이야기를 들어주던 이가, 상대가 화장실에 가자마자 싸늘하게 표정을 바꾸며 휴대폰에 대고 험담을 쏟아내는 순간. 그 기괴한 '두 얼굴'을 목격할 때면 내 안에서는 형언할 수 없는 거부감이 일렁인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가짜로 살 수 있지?”라는 비난은 금세 “나는 적어도 저들처럼 비겁하지는 않지”라는 안도감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렇게 타인을 향해 쏘아 올린 화살은 내 마음을 잠시 서늘한 정의감으로 채우지만, 그 끝에 남는 건 늘 묘한 공허함이었다.
수천 년 전, 바빌론 그발 강가에 서 있던 에스겔의 사명도 이 지독하게 불편한 '거울'의 한복판에 있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멀리 떨어진 예루살렘의 파멸을 선포하게 하셨다. 그런데 그 방법이 기이하다 못해 처참했다. 430일 동안 옆으로 누워 자야 했고, 인분으로 불을 피워 떡을 구워 먹으라는 청천벽력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제사장 출신으로 평생 정결함을 생명처럼 여겼던 에스겔은 "결코 그럴 수 없다"며 절규하듯 호소했고, 결국 하나님은 인분 대신 쇠똥을 허락하셨다. 하지만 쇠똥으로 불을 지펴 구워낸 떡을 꾸역꾸역 씹어야 하는 사명자의 비참함은 여전했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아 바람에 날리는 기괴한 행패에 가까운 삶. 이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존재의 파괴였다. 하나님은 왜 사명자의 삶을 이토록 일그러뜨리면서까지 참혹한 비극을 생중계하게 하셨을까?
그발 강가에 함께 있던 포로들은 에스겔의 그 기괴한 몰골을 보며 처음엔 혀를 찼을 것이다.
"미쳤군, 저게 무슨 선지자야" 라며 손가락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에스겔의 비참한 모습이 사실은 멀리 있는 예루살렘의 운명이자, 지금 이곳에서 여전히 정결한 척, 거룩한 척 살아가는 자신들의 진짜 민낯임을 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멈춰 선다. 내가 타인을 향해 쏘아 올린 날카로운 정죄의 화살들이 사실은 내가 가장 보기 싫어 외면해왔던 나의 일그러진 거울이었음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가식적인 사람들을 혐오하면서도 정작 나 역시 상황에 따라, 혹은 내 안위를 위해 얼마나 자주 진심을 가리고 살아왔던가. 타인의 이중성을 비난하며 세웠던 나의 '정의감'조차, 사실은 내 안의 어둠을 들키지 않으려 덧입힌 또 다른 가식은 아니었을까. "인분은 절대 안 된다"고 버텼지만 결국 쇠똥 위에서 떡을 구워야 했던 에스겔의 그 구차한 순종의 자리가, 실은 깨끗함을 말하면서도 일상의 비굴함을 다 던져버리지 못한 내 솔직한 자리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사명이란 단순히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확성기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포함한 모두를 가장 정직한 거울 앞에 세우는 고통스러운 직면의 과정이다. 타인을 향해 퍼붓던 그 뜨거운 비난이 차가운 거울에 반사되어 내 가슴으로 되돌아오는 순간, 비로소 정죄라는 가면이 벗겨진다. "저 사람이 바로 나였구나"라는 항복의 고백이 터져 나올 때, 비로소 '새 영'이 숨 쉴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오늘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누군가의 모순은, 어쩌면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가장 가까운 귓속말일지도 모른다. "너는 어떠하냐"고 묻는 그 거울 앞에 서서, 나는 타인을 향해 쥐고 있던 정죄의 돌멩이를 슬그머니 내려놓는다. 나를 살리는 건 타인을 향한 정의감이 아니라, 내 안의 어둠을 대면하는 아픈 정직함임을 이제야 조금씩 배운다.
사명은 세상을 향해 외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내 앞에 놓인 불편한 거울을 피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 아픈 자각 끝에 흐르는 눈물이, 나를 다시 살리고 타인을 향한 진짜 사랑의 시작이 될 것임을 믿으며.
“네 눈에 보이는 타인의 가시가 아프냐. 그 아픔은 내가 너를 부르는 신호란다. 정죄의 손가락을 거두고 내가 네 앞에 세운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렴. 네가 그토록 혐오하던 그 모습이 실은 내가 고쳐주고 싶어 하는 너의 아픈 부분이란다. 사명은 네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거울 앞에서 네 가면이 벗겨지는 것을 허용하는 일이다. 두려워 말고 마주하렴. 그 아픈 대면 끝에 내가 예비한 진짜 평안이 기다리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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