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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해 Sep 15. 2024

이세계는 언제나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내가 이세계로 떨어지는 것은 흔해 빠진 이야기처럼 정말 갑자기, 그리고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쯤, 나는 과거에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근황을 물었다. 내가 갈피를 못 잡을 때 흔히 쓰는 수법이다. 나와 같은 길에 잠깐 있었던 사람들이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지금 선택한 길이 아닌 그 사람이 선택한 길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의 근황을 듣던 중 한 친구가 호주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형 나 호주로 워홀 왔어."

"엥 갑자기?"

"ㅇㅇ 여기 살기 좋아"

"나 가면 좀 도와주냐?"

"오면 도와주지?"


그렇게 나는 이세계로 떨어졌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호주를 가겠다는 말에 걱정을 많이 했다. 거기 가서 적응을 잘 못할 것이다, 이제 경솔하게 행동하면 안 된다, 여기나 거기나 돈도 그렇게 차이 안 나고 나이도 있는데 이제 빨리 미래를 생각해야 되지 않냐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워홀 갔다 온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꽤나 많이 들어봤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살면서 무엇인가를 쥐어본 적이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다. 주변 평판은 애초에 크게 내 결정에 영향을 주지도 않았고 30년 가까이 되는 삶을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 어떤 말로도 내가 이세계에 떨어지는 일을 막지 못했다. 애초에 내 삶은 언제나 이세계 다음 이세계 그리고 다음 이세계였다.


내 삶에 처음 이세계는 학교였고 거기서 처음 웃는 법을 배웠었다. 여타 어린애들이 늘 그렇듯 나는 가족보단 친구를 더 우선시했다. 언젠가는 학교가 내 세상의 전부였던 때도 있었다. 그 세계에 익숙해질 때쯤 컴퓨터 세계에 떨어지게 되었다. 작은 연결통로 뒤에는 바깥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세계가 언제나 나를 반겨주었고 그곳에서 주인공이 되는 삶이 좋았다. 그때 내 세상은 더 이상 현실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내 삶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순간은 멈추지 않고 내게 다가왔다. 언제까지고 내가 이세계인으로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런 생각이 나를 가득 채울 때 피터팬은 떠나갔고 현실은 내게 이세계로써 다가왔다.


다행히 현실이 이세계가 되었어도 나는 언제나 그렇듯 잘 적응했다. 그래도 이전 이세계 후유증으로 신체 능력도 달리고 재능도 없는 사람이었기에 맨 처음 이세계였던 군대에서 애를 참 많이 먹었다. 워낙에 많이 맞아 첫 휴가 때는 집에서 옷을 벗지 못했다. 어머니는 내 몸에 멍으로 핀 동양화를 보면 눈물을 흘리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나는 악착같은 노력으로 군대라는 이세계를 빠져나올 때엔 간부도 경험해 보고 상도 받고 선임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나올 수 있었다. 후일에 선임들이 말하길 내가 무릎 꿇고도 팔굽혀펴기를 하나도 못하고, 달리기도 못하는 것을 보고 '조졌다.'는 평가를 내렸던 것을 생각해 보면 내 스스로도 참 잘 적응했다고 대견스럽게 느끼기도 한다.


자신들과 평생 함께 하자는 평범한 엔딩 클리셰를 뒤로 하고 나는 다른 이세계들을 탐방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 이세계들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군대라는 이세계에서 얻은 치트 능력을 바탕으로 어딜 가든 금방 적응했다. 신체 능력만을 필요로 하는 세계에서는 초반에 조금 애를 먹긴 했지만 2주 정도 지나자 큰 문제없이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여러 이세계를 방랑하며 느낀 것은 어떤 세계던지 2~4주 정도면 몸이 그곳에 맞춰진다는 것과 도움이 안 되는 이세계는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전혀 쓸 곳이 없을 것 같던 노가다도 물건을 드는 요령을 알고 있다는 능력이 도움이 되어주었고, 시간과의 싸움이던 보안 업무도 무한할 것 같은 시간을 버티는 능력이 도움이 되어주었다. 전혀 쓸모없을 것 같던 능력들도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주는 정체성이 되어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항상 내게 하는 말이 있었다.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하나만 할 줄 알아도 먹고사는 것에 지장이 없다고. 이거 했다 저거 했다 방황하는 사람들의 말로는 무엇하나 책임지기 힘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삶의 깨달음이기도 했지만 딱히 어느 것에도 재능을 보이지 않았던 내가 걱정되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린이는 청개구리의 현신일 수밖에 없다. 그런 걱정을 듣고 자란 사람이라 그런지 나는 내 나이 때에 사람들과 비교해 봤을 때 꽤나 다양한 일을 해봤다. 재능이 받쳐주는 것도 아니라서 어른들이 걱정하던 그대로 뭐든지 다 할 수 있지만 딱히 잘하는 것은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어른들의 걱정대로 나도 미래를 생각하면 막역한 두려움이 다가온다. 그래서 어른들의 걱정이 피부 속으로 이해가 된다. 어둠이 나를 짓누를 때엔 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짓눌림을 당하는 그대로 땅속으로 바스라질 것 같은 감정이 들곤 하니까.


그래도 다행히 이런 삶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누구와 만나도 삶의 공감을 이루며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마치 다른 직장 동료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 사람의 힘든 점을 공감하며 위로와 웃음을 전달해 줄 수 있다. 공감은 이해를 불러온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체험해 보는 것과 같다. 나는 다른 사람과 나누는 짧은 대화로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음 장점은 좀 더 높은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필연적으로 사람은 비교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세계에서 다음 이세계로 넘어갈 때마다 각각의 세계를 비교했다. 여기는 이전에 경험했던 이세계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하며 말이다. 이런 공통점을 이용해 나는 점점 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시간이 빨라졌다. 이전 세계에선 평범한 능력이 여기선 조금 특별한 능력인 전형적인 클리셰처럼 말이다.


그렇게 세계와 세계를 비교하다 보니 내 시점은 점점 더 높아졌다. 나라와 나라를 이으면 대륙이 되듯이 나는 세계와 세계를 비교하며 엮어가면서 좀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된 것이다.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다.' 다른 세상과 다른 세상을 엮어 가며 내 시점이 어느 정도 높아졌을 때 내가 느낀 깨달음이다.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이세계들은 결국 하나로 이어져있었다. 그 하나는 역시 사람이다. 어떤 세계든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서 연결되어 있었다. 세상을 하나하나 따로 보았을 땐 새로운 경험이란 나라는 책에 한 페이지씩 세계를 끼워 넣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사람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을 하니 나라는 종이에 다양한 모양의 구멍을 내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한 세상에 갇힌 사람은 그 세상이 보여주는 것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 종이에 그 세상이 허락하는 만큼의 구멍을 내고 그 구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세상을 경험한 나는 조금 더 넓고 다양한 구멍들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다양한 구멍들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 그게 내가 정처 없이 표류한 삶의 보상이었다.


어른들의 말처럼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건강검진 시기가 되었다는 편지처럼 잊을만하면 찾아와 현실을 마주하게 만들지만, 내가 의도하지 않고 떠돌았던 모든 시기조차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목표를 갖지 못한 사람은 결국 뒤처지고 도태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내 답은 '대체 왜 무엇으로부터 뒤쳐지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목표 없이 바람이 부는 대로 살아왔어도 무너지지 않고 여태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장애물의 연속이라 본 것이 아닌 사람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을 유랑하며 깨달음을 적어가는 음유시인이라 생각했던 덕분이었다. 결국 돌이켜보면 내게 목표가 없던 것이 아니라 남들과 조금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무너지지 않았던 것이다. 내게 목표는 단 하나 '이해'였다. 나는 세상을, 사람들을, 사회를 그리고 나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삶의 방식은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에 최고의 방식이었다.


그런 내게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진짜 '이세계'로의 초대는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내 마음속 한 구석에서는 항상 서양 문화권에 대한 이해의 갈망이 있었다. 하지만 쉽사리 할 수 없었던 것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돈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취직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이해를 할 수 있으려면 이것들을 이어주는 수단이 필요했다. 그 수단은 당연히 말이다. 말은 상대방과 연결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큰 콤플렉스는 영어였다. 영어 단어가 왜 그렇게 안 외워졌는지 내게 오히려 쉬운 글자는 한자였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가훈아래에서 자란 나는 한국인이란 자부심과 함께 죽을 때까지 한국을 떠날 마음이 없다고 자부했어서 영어공부를 안 하는 토종 한국인 컨셉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어렴풋이 느끼곤 있었다. 외국인을 이해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그래서 나는 그냥 떠났다. 정처 없이가 아니라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내가 이립(30세)의 나이를 먹고 나서야 세운 첫 번째 목표를 위해서. hello와 sorry, thank you와 this를 가지고 그렇게 나는 무작정 이세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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