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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빌 언덕 Dec 13. 2017

아이들은 답을 알고 있다

놀이치료 이야기

생각해보면 상담자가 되어가는 나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준 스승은 내담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은 특별한 감동과 감정을 보태서 나를 가르쳐주었다. 모든 가정에서도 그러하듯 아이가 어른에게 주는 것이 더 많다.


그 아이는 놀 줄을 몰랐다. 경험이 부족했다. 놀이치료 초반에 아이는 늘상 엄마-딸 역할 놀이를 했다. 아이는 딸 역할이었고, 나는 엄마역할이었다.


딸은 늘 아프다. 열이 나고 기침을 하고 어지러워서 엄마품에 쓰러진다. 엄마는 딸의 이마에 열을 재고 물수건을 올려준다. 걱정스런 목소리로 딸의 상태를 묻는다. 딸은 상태가 좀 나아지면 소풍을 가겠다고 짐을 싼다. 엄마는 김밥을 말아 도시락을 싸준다.


치료사와 아이가 소박하고 단란하게 할 법한 역할놀이였다.


문제는 아이가 이 놀이를 6개월 내내 반복했다는 점이었다. 치료사가 지겹다고 놀이를 바꿀 수는 없었다. 아이는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거니까 무조건 따라가야한다. 게다가 같은 놀이를 이렇게 오래 반복한다면 얼마나 의미가 많은가.


6개월동안 나는 오롯이 그의 엄마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변화가 생겼다.


무엇이었을까. 아이가 그 놀이를 그만두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아이는 놀이를 계속했다. 다만.


이제 아이가 엄마 역할을 했다. 나는 늘 아프고 징징대는 딸 역할이었다. 아이가 나를 간병했다. 나는 아이의 작은 무릎에 머리를 뉘였고, 아이가 나를 쓰다듬어줬다.


소풍을 가는 날에는 아이가 도시락을 싸줬다. 그런 날이 또 몇개월이 흘렀다. 놀랍고 감동적인 변화였다. 


아이는 엄마가 없었다. 엄마 경험이 없었다. 열이 날 때 토닥이며 걱정해주는 엄마가 없었고, 소풍갈 때 김밥싸주는 엄마가 없었다.


아이는 생전 처음으로 그런 경험을 나와 했다. 그러니 그렇게 똑같은 놀이를 1년 가까이해도 질리지가 않는 것이었다.


6개월은 자신이 충족받는 경험에 몰입했다. 그렇게 애정에 배가 부르고나니 이제는 누구를 보살피고 싶은 넉넉함까지 생길 정도로 건강해진 것이다.


엄마 역할을 하는 6개월은 내게 솔직히 지루함과의 싸움이기도 했으나, 아이가 어느 날 이제 자신이 보살펴주겠다고 했을 때부터는 감동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사랑을 받고 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이는 도벽이 없어졌고, 누굴 때리는 일도 없어졌다. 비록 상담센터를 오게 된 이유는 그것이었지만 내게는 처음부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혼내는 어른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부모였다. 아이는 자신의 문제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역할을 함께 해줄 파트너를 만난 것만으로 아이는 행복해졌고, 건강해졌다. 


그 뒤로 상담자로 일하면서 내가 믿는 몇가지가 생겼다.



'아이들은 늘 답을 알고있다'


'아이들이 어른을 깨우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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