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문장들
자의 반, 타의 반 프리랜서 선언 이후 내 삶을 바꾼 장점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9 to 6’에서 벗어나다 보니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 자체만으로 삶의 질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몸소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에야 팬데믹이라는 긴급상황으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의 고통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긴 하다. 그래도 현재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는 행복이 이렇게 큰 것인지 몰랐다.
종종 집에서 일하지 않는 경우 공유오피스에서 일을 하곤 하는데 10시 정도 지하철을 타면 의자에 앉아서 가기도 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경험이란 말인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둘째로는 낮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축복이었다. 일을 하는 사람이 낮잠을 잘 수 있다고? 이 자체가 얼마나 즐거운 낙인지 그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글로만 알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의 낮잠 문화, ‘시에스타’를 간접 경험을 통해서만 알고 있었는데 낮잠이 가져다주는 행복이 엄청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공유오피스의 데스크에 엎드려서 잠시 눈을 붙이든, 집에서 오전 근무를 마치고 침대에 눕든 상관없이 낮잠이 가져다주는 효율성은 100가지라도 술술 말할 수 있을 만큼 좋은 것이었다.
심장병 위험도 낮추고 스트레스도 감소시켜 오후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낮잠을 즐긴 역사 속 인물들도 많았다. 만성 불면증 환자였던 나폴레옹은 밤에 자지 못해 낮잠을 꼭 자야 했다고 하며 발명왕 에디슨 역시 낮잠을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아인슈타인 역시 ‘마음을 깨끗하고 창의적으로 만들어준다’며 낮잠 자는 것을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경우 자신만의 독특한 낮잠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선원으로 활동했던 경험 때문이었다고 한다. 바로 장기간 항해하다 보면 위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토막잠을 잔 것이다. 4시간마다 15분씩 잠을 자서 총 1시간 30분의 낮잠을 잤다고 알려져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숟가락과 금속 팬을 이용해 낮잠을 조절한 것으로 유명하다. 팔걸이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쥐고, 그 아래에는 금속 팬을 두고 잤다. 깊은 잠에 빠져드는 순간 숟가락이 팬에 떨어지면서 나는 큰소리에 잠에서 깨어나도록 장치를 한 것인데 그만큼 낮잠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회사를 그만둔 것이 반드시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이유를 찾아보면 내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주어진 상황,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들에 충분히 만족하며 앞만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점심을 먹진 않았지만 벌써 오후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글을 다 쓰고 나면 한숨 거나하게 자고서 다음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그렇게 나 역시나 역사 속의 한 인물처럼 낮잠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를 위한 삶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다시금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