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문장들
편집자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을 때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책 제목이나 문구, 목차 등은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내야 해요. 독자들에게 희망을 선사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써야 한답니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변해버린 탓일까. 이제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아낸 듯한 제목의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나 역시나 언제나 긍정적인 메시지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멋진 사람이 되도록 살아야만 했다. 너무나도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그 바보 같은 생각을 도대체 몇 년이나 품고 살아야만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못 하는 것이 많은데도 잘하는 것처럼 나를 포장하기에 바빴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아프게 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는 마음껏 내려놓고 싶다.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이제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저 혹시 이거 할 줄 아세요?”
“죄송해요, 제가 못 하는 것이라 어쩔 수가 없네요.”
그 한마디 하는 것이 왜 그렇게도 힘들고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선은 SNS부터 서서히 끊기로 마음먹었다. 뭐든지 잘하는 나로 보이게 했던 그 가상의 공간에 나를 밀어넣고서 거짓된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참된 나로 사는 것이 훨씬 진실된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면 사는 것이 그렇게 쉽고 편안해지는데 왜 그렇게도 못 하는 것이 많은데도 다른 잘하는 것들로 포장하고 덮고서 아닌 척해야 했는지 알 수 없다. 최근에 이처럼 모든 것들을 내려놓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너무나도 크게 내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사건인 만큼 그날 이후로 다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옷 정리부터 이어진 정리는 집안 곳곳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정리하는 데 보내고 나니 집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뭐든지 싸 짊어지고서 “예스”만 외쳐온 나를 내려놓고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오늘부터라도 할 수 있는 것만 할 거라고 충분히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못 하는 것은 못 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충분히 장착했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못 한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섭섭해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