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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Aug 31. 2020

명절, 그들만 즐거운 잔치

이혼 전 이야기 #.15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후 첫 명절.

시가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이는 예전의 집이 아닌 엄마가 계신 우리 집에 갔다. 

시가와 작별을 한 이후로 엄마 집을 더 이상 친정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엄마가 있는 '우리 집'일뿐이었다.


직장 다니느라 바쁜 엄마를 위해 우리 가족이 먹을 음식을 간단하게 했다.

아무 도움 없이 혼자 기름 냄새를 뒤집어쓰며 익숙하게 전 몇 가지를 뚝딱하자 엄마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가르치지도 않은 것을 그 집안에서 혼자 얼마나 해댔길래, 이렇게 솜씨 좋게 해서 내놓나


엄마는 내가 만든 전을 '간이 맞다, 맛있네.'만 하셨지, 더 이상 드시질 않았다.




결혼을 하고 나서 시어머니는 제사를 지내는 큰아들 집에 안 가겠다고 엄포를 놓으셨다. 자연스럽게 명절에는 시어머니가 있는 우리 집에서 시가 사람들이 모였다. 형님 내외분은 집에서 제사를 홀로 지내시고 우리 집으로 왔다.


어머니의 자식들 7남매와 거기에 딸린 사위, 외손주, 친손주, 나중에는 그 손주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증손주들까지 우리 집에 다 모였다. 명절 오후부터 한 팀 한 팀 오기 시작해 저녁상만 여러 번을 차렸다.

밤에는 술상, 고스톱과 카드를 하는 남자들을 위해 야식상이 나가야 했다.


집이 좁고 사람도 많아 두 번에 걸쳐 밥상을 차려내고, 이어지는 후식상. 그러다가 점심때가 되면 또 밥상...

그렇게 1박 2일을 우리 집에서 꼬박 채운 시가 사람들이 다음날 저녁 즈음 돌아갈 때는 명절 음식을 손에 들려 보내야 했다. 그것까지 해야 어머니가 명절을 제대로 보낸 기분이라고 하셨다.


이틀 내내 먹고도 싸줄 만큼 음식을 만들어내야 했다.


출산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구정 명절이 다가왔다.

남편은 명절 전날에도 회사를 갔다. 시어머니는 내일이면 올 딸들, 큰아들, 사위들 생각에 즐겁게 나물반찬을 하셨고 나는 만삭의 배로 거실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전을 부쳤다.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딱딱하게 뭉쳐오는 배를 수시로 문질러가며 명절 음식을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이 집의 며느리로서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매번 명절마다 서너 가지 이상의 전과 해물탕거리, 국거리를 손질하고 구울 생선을 장만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밑반찬을 만들어 놓고 고기를 재우거나 양념갈비를 사서 쟁여놨다.


박스채 술을 준비하는 건 기본이었다. 명절 때마다 들어가는 식자재값은 70만 원을 우습게 넘겼다.


기절할 것 같인 이틀간의 대장정이 끝나고 부엌에서 명절용 그릇을 정리하고 있으면 시어머니가 흐뭇하게 거실에서 돈다발을 펼쳤다.

"큰아들이 십만 원, 둘째가 오만 원, 셋째가 오만 원...."


누가 얼마의 용돈을 줬는지 펼쳐 보이며 즐거워하시다가 당신의 통장과 함께 건네주셨다.

"이거 내일 내 통장에 넣어주라."


고생했다고, 목욕탕이라도 다녀오라고,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라고 용돈 중에 몇 장 빼주시는 일이 없었다. 시가 사람들 어느 누구도 연휴 동안 집에도 못 가고 상차리느라 고생했다고 천 원 한 장 건네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에겐 친정이었으니 먹고 쉬다가 놀다가 가는 게 당연했던 걸까.


공중화장실이 되어 버린 수십 명이 사용한 우리 집 화장실의 악취를 맡아가며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으로 그렇게 명절이 끝났다. 

한 번도 쓰러지거나 힘들다고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참 멍청했고 둔했다.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나도 엄마 보고 싶고, 이틀 동안은 너무 힘들다고 왜 말하지 않았을까.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건 너무한 거라고, 네가 이야기해도 된다고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집안에서는 나 빼고 다 한 핏줄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명절 중에는 남편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는다.

대화를 해보지 못했지 때문인 것 같다.

매형들과 조카사위들과 술잔을 부딪히기 바빴고, 나를 부를 때는 안주 좀 더 갖고 오라는 용건뿐이었다.


그렇게 소가 묵묵히 쟁기질하며 고랑을 타듯, 일만 죽어라 하는 여자가 집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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