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모른다는 걸 들키기 싫어서다. 모르는 게 부끄러워 질문하지 않는다. 또한 나서기 싫어서다. 다들 궁금해하는 건 알겠는데, 그들을 대표해서 굳이 나서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 질문해 주겠지 하며 기다릴 뿐이다. 또는 질문받는 사람이 귀찮아하거나 답변을 못 해 난처해지지는 않을지 노파심에서 질문을 폭한다. 말대꾸하고 대드는 것으로 비칠까 봐서도 못 한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다"-25쪽, <나는 말하듯이 쓴다>(큰 글자책, 위즈덤하우스) 중에서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지나치고 싶었던 곳에서 질문을 하도록 이끈다. 나도 질문을 잘하는 편이 못 된다. 강원국의 말처럼 궁금한 게 마음속에 있어도 그냥 내가 더 알아보면 될 거라 여기며 질문을 닫아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마음속에 품은, 내가 닫아버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놀란다. 저거 내가 하려고 했던 질문인데. 거기다 발표자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좋은 질문이라고 말할 때는 막 잡으려던 금메달을 놓친 기분이다.
강의를 마친 발표자가, 질문이 있는지 청중을 향해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한 참가자가 질문을 했다. 답변이 끝나고, 다른 분 질문이 있냐고 묻자 다시 침묵이 몇 초간. 질문이 없으면 그대로 끝날 듯했다. 질문을 했다. 그리고 좋은 질문이라고 말해줬다. 질문을 더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은, 우선 어떤 형태든 질문에 대해서 좋은 질문이라고 말해주는 발표자 덕분이다. 무플보다는 악플이라도 있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냐며 마음 쓰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 평범한 질문을 좋은 질문이라고 말을 한다. 그런 질문에 성의 있게 답을 해주고, 더 확장해서 설명을 하거나 미처 강의 중에 하지 못한 중요한 부분을 꺼내놓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질문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질문은 다른 문을 열게 해주는 통로다.
미처 열지 못한 문을 열게 해주는 기회다. 어떤 질문이 어떤 길을 열지는 모른다. 그래서 어떤 질문도 그냥 넘길 것이 없다. 옷차림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상대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남들 눈을 의식하며 옷단장을 한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공간에서 던진 질문을 얼마나 사람들은 기억할까. 부끄러움보다는 새로운 문을 여는 기회로 생각한다면 다음번에는 좀 더 질문할 용기를 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하다 보면 단골질문자가 되지 않을까.
책을 읽고, 쓰고 보는 것을 통해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질문을 통해 얻은 답은 오래간다.
강원국은 같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답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라 의문을 품고 반문하는 사람, 문제를 풀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