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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Aug 22. 2024

잠들지 않는 밤, 잔상

수많은 얼굴



밤이다. 태국을 다녀오고 나서 어스름한 방 안을 보고 누워있으려니 모든 게 참 감사해진다. 엄밀히 고하자면 다소 숙연하다. 비싼 집도 아니고 넓은 집도 아니고 하물며 내 집도 아닌 곳. 적당히 불어오는 에어컨 바람을 쐬며 며칠간의 여정을 떠올렸다. 산호섬의 아름다운 자연이나 방콕 도시의 하이라이트 저편엔 기본적인 삶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몇 개의 나라를 여행하며 여행자 입장에서 이토록 빈부격차가 크게 느껴지는 나라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저들로 태어났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 안의 대화를 많이 했다.

여러 인생을 보았다. 선풍기는커녕 열기 가득한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로컬 식당 직원이라거나 시원하다 못해 춥다고 느낄 정도의 백화점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직원, 땡볕에 서서 400원짜리 꼬치를 구워 파는 아저씨나 하루 종일 조그만 공간에 앉아 사람을 실어 나르는 택시, 유명 미슐랭 식당의 영어가 능숙한 매니저나 매일 같은 코스를 돌며 관광객을 챙기는 가이드, 외국인의 발을 씻기고 종아리를 주무르는 데 온 힘을 쏟는 마사지사나 깔끔하고 정돈된 차림의 호텔리어, 하얀 피부에 윤기가 흐르는 피부를 가진 드레시한 부유층이나 젊은 태국 여자에 늙은 백인 남자 조합, 어떤 성심도 호의도 없는 건물 경비원이나 지나는 사람들에게 기도를 드리는 승려, 쥐와 바퀴벌레가 들끓는 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소녀나 생계 수단인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수다를 떨며 때늦은 밥을 챙겨 먹는 남자들.

더 깊은 곳으로. 아이 셋을 데리고 시궁창 위에 앉아 불안하고 조급한 눈으로 인스턴트를 먹이는 엄마나 아기새처럼 모여 아직 순진하고 무구한 얼굴의 아이들. 헐벗은 채 손님을 기다리는 가게의 여자들이나 더 헐벗은 채 하룻밤의 가격을 흥정하는 거리의 여자들(아마 과거엔 남자였을 것으로 보이는), 누구도 지나지 않는 육로 밑이나 골목 사이에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들. 늦은 밤까지도 거리의 소음으로 가득한 곳. 딱딱한 바닥. 더위와 모기를 동시에 쫓으며. 아무것도 없이,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이. 한때는 딸이나 아들이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친구로 불렸을 그 이름들.

어느 삶이 반짝이고 남루한 것인지 감히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내가 느끼고 보고 경험한 모든 것들을 함부로 손으로 쥐어보거나 머릿속으로 재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들어오는 감각에 스스로가 멋쩍었다. 또 어떤 모습을 보고는 내 것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었을 때는 그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과연 ‘오늘 하루’는 능동일까 피동일까. 오늘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는 건 그야말로 비참하다. 목도했던 이들 가운데 지금의 삶을 진정으로 원했던 이가 있었을까. 밥을 먹고 일어나 학교에 가는 게 당연하듯 사창가로 나서는 게 당연했던 어린 시절이었다면 어쩌지. 미래나 꿈 따위가 아니라 당장에 먹고사는 법이나 상대를 유혹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면 어쩌지. 날 때부터 내 한 몸 편히 뉘일 공간도, 따듯하고 정갈한 식사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면 어쩌지. 환대가 아닌 찌푸림과 멸시에 이미 익숙해졌다면 어쩌지. 용기보다 포기와 무기력이 한참이나 빨랐다면 어쩌지.

내가 뭘 어쩔 수 있을까. 돈 몇 푼 쥐어준다고 나아지는 거라면,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숨 쉬듯 자연스레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이들에겐 영영 어려운 일일까 두렵다. 동시에 안전하고 아늑한 이불 위, 적당한 온습도에 감사해하는 스스로에 머리가 복잡하다. 감사해도 되려나. 대부분은 운의 문제일 텐데. 하찮은 동정심, 이중적인 감사함. 여행으로 얻은 즐거움과 환희, 그리고 불편한 마음. 이웃이 겪는 어려움을 못 본 체 지나쳤다는 후회. 벌써 안개처럼 희미하고 아득해지는 표정. 비현실적이고도 현실적인 누군가의 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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