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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Aug 08. 2024

입꼬리의 주인

감정 선택하기

오랜만에 서울에 와서 그런지 별의별 사람을 만났다. 늦은 저녁 데이트를 하러 간 음식점의 직원, 이른 아침 점심 데이트를 하러 간 음식점의 직원, 디저트를 먹으러 간 젤라또 집 직원, 잠시 들른 아이파크 zara, 올리브영, 다이소 직원, 공항버스 기사님, 제주항공 직원, 수화물 안내 직원, 잠바 주스 직원, 공항 안내 데스크 직원, 스튜어디스, 목소리만 들었던 기장님까지. 나는 이상하게 어릴 적부터 타인의 목소리와 표정과 같은 비언어적 신호에 민감하다. 그래서 그런지 직원이든 사장이든 불친절하다고 느끼면, 약간 속상해하는 심약자다. 유약한 마음과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달까.

그런데 어느 시점부턴가 상대 태도로 인해 내 기분을 망치는 건 정말 어리석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마주친 후 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잘 다스리는 연습을 하곤 한다. 물론 이런 마인드 컨트롤이 쉽지 않을 때도 있긴 하지만(그래서 블로그에 불친절했다고 리뷰를 남기며 속상해하기도 함), 별일 아닌 일을 별일 아니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점점 커지고 있다. 어제저녁부터 오늘 저녁까지 만났던 사람들, 앞서 언급했던 나를 스쳤던 인원을 13명이라 어림잡아 보자. 이 중 네 명 정도에게 틱틱거림이나 불친절함을 느꼈는데, 속으로 그저 이런 생각을 했다. 힘드신가 보네.. 난 기분 좋은데 ㅎㅎ! 결국에 다정함이 이기는 것이란 생각에(책 안 읽어봤음, 표지만 봄) 나는 나대로 밝은 태도를 유지했다. “감사합니다”와 곰살맞은 미소 짓기. 뭐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다음 손님에게는 조금이나마 더 친절하게 행동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며.

상대가 먼저 웃길 고대 하며 그의 표정을 살피기보다, 내 입꼬리를 올리는 일이 훨씬 쉽다는 걸 깨닫는 중이다. 그렇게 나 한 사람이 웃고, 옆 사람이 웃고, 또 다른 사람이 웃게 됨으로써 우리가 조금만 더 여유 있고 정다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미소는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오는 것이니까.

한편 이 알쏭달쏭한 세상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과 환대를 베풀었다는 사실이다. 안전벨트를 꼭 맸는지 확인해 주시는 버스 기사님. 조근조근 차분하고도 앳된 말투로 수화물 이동을 돕던 직원분. 따스히 응대해 주시는 스튜어디스분들. 새카만 밤하늘임에도 현재 제주 상공을 지나고 있으며 왼쪽에는 한라산이, 오른쪽에는 고기잡이배를 볼 수 있으니 둘러보시라 방송해 주시는 기장님. 알고 보면 나는 다수의 관용과 배려, 양보 속에 살고 있던 거다. 어둔 하늘을 비행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지금,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는 달리 마음에는 환한 빛이 들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암’이 있으므로 ‘명’을 알아차릴 수 있고, 외부 자극(상황)과 무관하게 나의 내부는 별개의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자명한 사실을 인식하게 된 오늘의 만남들에 깊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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