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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Jul 25. 2024

나만 아는 네 구석들

너를 소개한다면



오빠와 공원 산책을 했다. 나란히 걸으며 별별 얘기를 나눴는데, 역시 오빠와의 대화는 언제나 아주 즐겁다.

오빠 내가 어디서 봤는데, 언제나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한대. 그래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거든? 첫째는 모든 사람에게 배울만한 점이 꼭 하나씩은 있을 텐데 그럼 모두와 어울려야 하는 건가, 나보다 낫다는 게 기준이 뭐지 싶었고 둘째는 다른 사람을 보고 나보다 낫다, 아니다를 함부로 평가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도 들었어.

그랬구나, 근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비니가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사람과 어울려야 하는지 말야.

맞아,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 같아! 근데 더 자세히 설명해죠.

나보다 멋지고 나은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는 게 꼭 내가 어떤 판가름을 통해 사람을 구별하는 게 아니라 배울 게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라는 뜻일 것 같아. 이 둘은 약간 차이가 있지.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 있잖아. 이를테면 ‘와 저 사람 멋지다. 배우고 싶다. 닮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들!

그러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배울 점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지향하는 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란 뜻이겠구나? 그리고 상대에 대해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그 느낌과 생각을 믿고 그에 따라 관계를 맺고.

그렇지, 잇다가 아주 잘 알고 있네? ㅎㅎ

궁금증을 해결하곤 길가에 난 풀들에 시선을 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성숙한 사람, 내면이 단단한 사람, 좋은 어른, 멋진 어른, 여유롭고 재치 있는 사람, 건강한 사람, 다정하고 따듯한 사람, 배우는 사람, 재밌고 행복한 사람, 자유로운 사람, 걱정되지 않는 동료, 믿음직한 아내, 유쾌하고 든든한 엄마, 그리고 남편 같은 사람. 되고 싶은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닮아있을지 골똘히 생각했다.

집에 돌아와 시원하게 샤워를 마친 후 오빠가 만든 후무스를 통마다 소분해서 담았다. 그리고 쓰던 로션이 떨어져 네이버 멤버십이 가입되어 있는 오빠 핸드폰으로 로션을 주문했다. 그랬더니 오빠가 울상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흐잉 그거(네이버 포인트) 내가 주방도구 사려고 차곡차곡 모아둔 건데요ㅠ

써도 된다고 할 땐 언제고? ㅋㅋㅋㅋㅋㅋ 너무 귀여웠는데 일부러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쪽이 더 재밌기 때문이다. 얄밉게 이부자리에 쏙 들어와 고래를 펼쳤다.

이제 정말 잘 때가 되어 책을 덮고 먼저 잠든 오빠를 바라봤다. 고운 얼굴에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란 걸 아니까 문득 가슴이 설레 글을 쓰다가도 자꾸만 오빠를 쳐다보았다. 고래의 유명한 구절을 빌리자면 ‘그것은 불가항력의 법칙이었다.’라고 정의하고 싶다. 우리 엄마만큼, 혹은 엄마 이상으로(엄마 미안, 난 출가한 몸이야) 아름답기 쉽지 않은데, 오빠는 그걸 해낸다. 이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나만 아는 오빠의 구석구석이 있다. 얼마나 마음이 넓은지, 나를 위해주는 마음은 또 얼마나 깊은지, 사랑과 결혼에 얼마나 진심인지, 생각이 얼마나 깨어있고 상식적인지, 얼마나 됨됨이가 바르고 선한지, 얼마나 세심하고 사려 깊은지, 얼마나 쿨하고 뒤끝이 없는 남자인지, 평소 얼마나 귀엽고 곰살맞은지, 장난칠 땐 얼마나 웃기고 재치 있는 잔머리를 잘 굴리는지, 대화를 하면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도록 만드는지, 사랑을 갈구할 땐 얼마나 앙큼 맞고 깜찍한지, 요리사도 아닌데 요리에 얼마나 진지한지,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얼마나 찰떡같이 알아듣는지, 강한 사람에겐 얼마나 강하고 약한 사람에겐 얼마나 다정한지, 사람의 외면이 아닌 내면을 얼마나 잘 꿰뚫어 보는지, 사건의 표면이 아닌 본질을 얼마나 잘 파악하는지, 판단은 신중하고 행동은 재바른 모습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지, 또 이불을 턱끝까지 덮고 자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같은 것들. 누군가에게 너를 말로써 설명하고자 한다면 꼬박 한 달을 밤새워 전해도 모자랄 거야. 너를 글로써 설명하고자 한다면 팔만대장경을 빌려와도 칸이 부족할 거야. 그래도 계속해서 네 안의 새로운 구석을 알아가고 싶어. 그건 앞으로 펼쳐질 모든 일 중에 가장 흥미로운 일일 거야.

잘 자, 햇살이 비추면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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