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민폐
얼마 전 ktx를 탔을 때였다. 옆자리엔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앉았다. 이미 오랜 통화로 뜨듯해졌을 핸드폰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있었다. 가는 내내 통화를 하는 건 아닐까, 조짐이 약간 안 좋았다.
10분 여가 지났는데도 통화는 끝날 듯 끊이지 않았다. 오빠와 처음 연락할 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강제 추억 회상에 약간 좋기도 하면서 또 마음 한켠에서는 ‘무슨 사랑 처음해보나, 언제 끊는 거야 진짜’하는 성가신 마음도 들었다. 나름대로 조용히 한답시고 기차 창문에 붙어 이야길 하는데, 그 습기가 여기까지 전해져 왔고 달뜬 목소리라 은근히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20분이 지났다. 통화는 끝나지 않았다. 누구나 처음엔 미친 듯이 좋고 미친 듯이 설레고 세상에 오직 나만이 진짜 인연을 만난 것 같은 기분에 취한다. 도파민의 시기다. 폭발적인 도파민에 몸이 배배 꼬이는 그녀였다. 입 안 열기에 창문에 희뿌연 김이 서렸다.
30분이 넘어가는 즈음에야 흥분이 좀 가라앉았는지 드디어 전화를 끊었다. 사랑을 처음 해보는 게 분명했다. 잠깐 고민이 들었다. 이걸 청춘의 한 장면으로 봐야 할지 그냥 ktx 민폐녀로 봐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약 3분 정도 골똘히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난 내 마음이 편해지는 쪽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