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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Sep 12. 2024

직딩 안내서 - 힘의 과시

직장인 모여라

어느덧 직장생활 6년 차에 이르렀다. 수많은 이들을 만나며 깨달은 첫 번째 사실이 있다. 바로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음의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이다.





첫째, 무리를 지어 다니며 세를 드러내는 사람. 


한 3년 전이었나 부장들 중에 가장 괄괄한 여자 부장이 있었다. 그녀는 점심을 먹을 때조차 최소 3명은 끌고 다녔고 언제나 사람에 대해 말하길 좋아했다. 든든한 뒷배를 두는 것이 그들의 생존 법칙이다. 쉽게 말해 니편 내 편이 확실했다. 집단은 머릿수가 많아짐과 동시에 여러 규범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래선 안돼, 이런 행동은 배신이야] 우두머리는 무리의 안팎을 선명하게 그어 집단 안의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따스한 모습을, 무리 밖의 사람들에게는 냉철한 면모를 부각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소위 일잘러, 카리스마 여장부로 일컬어졌다. 또 편을 만들어 생활하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본능적인 소외감과 관계의 위화감을 유발한다. 뿐만 아니라 집단 밖의 상대로 하여금, 집단 구성원에 대한 언행과 업무 수행에 제약을 불러일으킨다. 일례로 업무 갈등을 빚을 때 자연히 정서적 불안정성을 들게 하는 것이다. 이는 사자의 습성과 닮았다.





둘째,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하는 사람.


이것도 3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평이 갈리는 남자 상사였다. 그는 말과 행동, 어느 것에 있어서도 과시하기를 좋아했다. 앞선 사자 유형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설 때는 쿨하고 결단력 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추구했고, 소수 또는 1대 1 상황에서는 반대되는 태도를 취했다. 억압하는 말투를 즐겨했으며, 영향력의 정도를 고려하여 사람과 부서에 따라 다르게 행동했다. 특히 머릿수가 적고 나이가 어린 쪽은 타깃이 되기 쉽다. 또 이들은 호칭이나 대우에 민감하다. 잘못 부르거나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호칭 따위가 뭐라고 거기에 모든 자존감을 내거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튼 무시한 것도 아닌데 지레 짐작하여 무시당한다고 느끼며 이 감각에 무척 예민하다. 행동으로도 보인다고 했던가, 운동으로 다진 가슴과 어깨 근육을 앞세워 전투적인 태도를 보였다.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 되려 무기로 여기기도 한다. 씩씩대며 나 이렇게 화낼 줄 아는 사람이야를 공표하는 것이다. 한편 침묵을 제 것으로 만들어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곧잘 했다. 한 가지 더 기억나는 특징으로는 보스 포즈라고 불리는 '회의 시간에 손으로 삼각형 만들기'를 주로 했다. 기어이 삼각형까지 만들었을 때는, '리더십'이나 '만만해 보이지 않는 방법'에 대해 유튜브로 공부했구나 싶어 슬쩍 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다. 아무튼 일반 대중에게는 그의 추구미를 성공적으로 선보였으니, 세모 리더십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음에는 이견이 없다.





생각해 보면 방법이 뭐가 됐든 한없이 약한 사람들이다. 약하므로 무기이자 울타리가 되어 줄 무리를 빠르게 만들고, 약하므로 금방이라도 한 대 칠 것 같은 기세로 걸으며, 약하므로 눈과 성대에 잔뜩 힘을 주고 말한다. 그게 잘 안되면 세모를 만든다든지. 그러고 보니 포즈란 포즈는 다 했다. 가슴을 내밀고 편다든지 두 손을 허리춤에 올린다든지 의자 뒤켠으로 푹 눌러앉는다든지 약간 껄렁하게 걷는다든지. 어린 시절 무엇이 결핍되어 공작새 마냥 늘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안쓰러운 사람들인 것은 분명하다. 추측하건대 가장 큰 결핍은 인정 욕구일 것이다.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뿌리 깊은 차별과 냉대를 경험했을 수도 있고, 또래 집단으로부터 배척당했거나, 사회초년생 시절 억울한 일을 자주 당했을 수도 있다. 무시당하고 우스워 보였던 숱한 기억에 대한 만회랄까? 지난날 제 마음을 찌른 타인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약했던 자신을 향한 분노가 죄 없는 타인에게 향하는 건 아닐까? 그도 아니면 전자의 경우엔(무리 생활 스타일) 못돼 먹은 인성을 타고나 따돌리기를 좋아하거나, 후자의 경우에도(혼자 고군분투) 천성이 못나 남을 짓누르고 싶어 하는 걸 수도 있다. 이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정한 만남이 어렵다는 점에서 가련한 건 매한가지다. 결국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하지 않는가, 안타깝게도 이들은 인생의 진리를 가장 멀리 하며 살아가고 있다.





덧붙이자면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상대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란 걸 알면 그 누구보다도 화들짝 놀란다. 그러나 곧 정신을 부여잡고 더 강한 기세로 몰아붙인다. 놀란 가슴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앞서 말했듯 알고 보면 가장 유약한 유형이기 때문에 이후로는 최대한 맞붙거나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 때로 부딪쳐 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기억 저편의 잔상들이 왜 갑자기 떠올랐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시절 나와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을 어딘가의 동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싶어 어설플지언정 끄적여 본다.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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