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말에 갇히지 않는 방법
얼마 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부장님과 동료 직원, 그리고 나까지 총 세 명이서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랐다. 부장님은 새로 온 A에 대해 평하고 있었다. '새로 온 A가 내게 파일을 받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을 통해 대신 받는 모습을 보고 A를 지적했다. 그랬더니 A가 혼자 화장실에서 울었단다. 원년멤버 B는 지적을 해도 울지 않는 걸 보면 B는 비교적 멘탈이 좋다'는 말씀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혼자 생각이 많아졌다.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면모가 있지 않은가.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기에 '그럼 나 같은 사람들은 잘 우니까 멘탈이 약한 축에 속하는 걸까, 부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겠지. 약간 속상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어서, 'A가 울었다고 해서 그걸 보고 정신력을 논할 수 있는 걸까?'라는 고민을 해보았다.
며칠 뒤 오빠와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위의 사건이 떠올라 오빠에게 전하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오빠는 이렇게 답했다.
"오빠 어쩌구저쩌구(상황 설명) 일이 있었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약간 속상해지는 거야. 잘 울면 멘탈이 안 좋은 거야?(시무룩)"
"나는 부장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아. A는 새로 온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게 낯설고 어려울 시기야. 다른 사람이 A를 도왔다면 오히려 그 도움 준 사람을 칭찬해야 마땅하지.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도운 거잖아. 모두 앞에서 치켜세워야 할 일을 모두 앞에서 망신을 줬어. 그런 분위기가 굳어지면, 누가 다른 이를 도우려 하겠어? 결국 건강한 조직이 되기는 힘들 거야. 부장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봐."
"아 그렇네..? 부장님 말씀에 꽂혀서 나도 그 프레임 안에서 이 상황을 바라봤던 것 같아. '잘 우는 것은 멘탈이 나쁜 것이다.'라는 주장에 꽂혀서 그 안에서만 맞냐 틀리냐를 따져 본 거지. 나도 모르게 그 문장에 갇혀서 생각했던 것 같아."
"응, 그리고 운다고 멘탈이 안 좋다니. 속상한 일에 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A가 얼마나 민망하고 놀랐으면 화장실에 가서 울었겠어. 나는 혼자 울고 있었을 A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 그리고 눈물과 멘탈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 전제가 틀렸어, 잘 운다는 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일 뿐이야."
"그것도 정말 맞다. 울면 우는 거지 내 얼굴에 내 액체, 내가 흘리겠다는데 정말 뭔 상관이람!!"
"ㅋㅋㅋㅋ그러게. 감정에 솔직한 건 아주 멋진 일이야."
오빠의 답을 듣곤 잠시 조용해져서 부장님과 있었던 또 다른 일을 떠올려 봤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있던 자리에서, 부장님은 후배뿐만 아니라 비슷한 연배의 동료 분들에게까지 약간 짓궂은 농담을 던지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원래 연배가 있는 분들은 저 정도의 농담은 하시는 건가? 하지만 상대방은 조금 불편해 보여. 내가 저 나이대의 넝담 기술을 몰라서 오해하는 건가?'라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오빠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생각을 물었다. 오빠는 이렇게 답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할 농담은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추측이지만 본인이 평소에 무의식 중에 갖고 있던 생각이 튀어나온 것 같은데?"
"아, 맞아. 그런 생각도 잠깐 해봤어. 평소에 걱정하고 있던 부분이 농담으로 튀어나온 것 같아."
"비니라면 어때? 부장님이 했던 농담들, 비니가 부장이라면 했을 것 같아?"
"아니, 나는 불편할 수 있는 말은 안 할 것 같아. 동년배가 아니라 후배들이라 해도. 그 자리에서 세심함의 부재로 인한 실수로나마 한두 번 정도면 모를까. 그렇게 일타쌍쌍쌍피로 여러 직장 동료를 불편하게 만드는 장난은 안 했을 것 같아. 그래서 신기했어. 원래 어른들은 저런가? 싶어서."
"그랬구나, 내 생각에도 부장님의 언행은 적절하지 않아. 나이와 직급을 떠나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언행은 별로인 것 같아."
두 번째 사례는 틀 밖에서 생각한다기보다 생각을 환기시킨다는 측면에서 좋은 대화였다. 또 얼마 전이었다. 내가 오빠의 추천으로 그림책 관련 강의를 듣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도 잠시, 강사님으로부터 수강자 대부분이 메인 강의를 모두 수료한 뒤 추가적인 내용을 듣는 강의인데, 내가 잘 따라올 수 있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그림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나는 덜컥 겁이 나서 수강 취소를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오빠에게 강사님과의 문자 연락을 캡처해 보내며 물었다.
"괜찮으려나?"
"응 부족한 부분 열심히 채울 거면 괜찮지
질문 적극적으로 하면서 따라가 보장!! ㅎㅎ
그리고 다들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개꿀이지"
"왜 개꿀이야??"
"잘하는 사람들 틈에 있으면 발전하니까!!"
"아하 조타 ㅎㅎ 나는 내가 뒤처지면 어떡하지 했는데"
역시 늘 긍정적인 오빠라 할지라도 나처럼 망설일 거란 예상은 기우였던가. 여기에 오빠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잘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속해 있는 그룹의 정체성을 자기화하는 것을 근거로 강의를 듣길 추천했다. 오빠와의 대화를 돌아보면, 누군가의 말 안에서 옳고 그름, 가/불가를 판단하는 데 골몰하는 나와 달리, 오빠는 항상 말의 밖에서 생각할 줄 알았다. 비단 내가 겪은 일뿐만 아니라 본인이 겪은 일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남편이다. 전제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힘이 있는 그가 멋져 보였다. 상황을 접할 때 멀리 떨어뜨려 놓고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미니의 추천으로 <더커뮤니티: 사상검증구역>을 모두 시청했다. 처음엔 페미니즘이나 정치 성향 같은 예민한 주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라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으나.. 며칠 동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푹 빠져 보게 됐다. 내가 알던 페미니즘, 정치, 보수, 개방적 사고, 전통적 사고, 서민층, 부유층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은 아주 일부이거나 편견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 그중 몇 명의 출연자(테드, 하마, 벤자민)는 질문 구조 밖에서 고민하는 지혜를 보였는데, 내가 만약 남편의 사고 메커니즘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이 프로그램 속 참가자들의 재기 또한 두루뭉술한 감상(우와, 저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구나 선)에서 끝났을 수도 있다. 이렇듯 오빠와의 대화는 언제나 내게 새로운 관점과 깊이 있는 깨달음을 준다. 오빠는.. 어떻게 이런 멋진 어른이 되었을까? 곁에서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지켜보며 더 더 닮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