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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Oct 24. 2024

남남


연초에 고객 가족의 거센 컴플레인으로 한동안 힘들었던 적이 있다. 나는 매뉴얼대로 한 데다, 친절하게 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억울했으나, 시간이 한참 지나 돌아보니 그래도 감정적으로는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그 고객을 다시 만나게 됐다. 그때처럼 또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시 상황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해진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아무튼 고객이 왔으니 어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의 가족에게 연락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사실 고객만 응대하고 말아도 될 일이었으나 문득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래, 까짓 거 부딪혀 보자!' 그렇게 가족 중 한 분께 연락을 했고, 아니나 다를까 나란 걸 밝히자마자 목소리가 안 좋아지셨다. 속상할 뻔했지만 침착하게 고객의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태도로 꼼꼼하게 설명하니 가족분께서 조금씩 마음이 풀리는 듯 보였다. 저번엔 내 디테일한 안내가 감정적인 공감을 해주지 않는단 이유로 불편했으나, 이번엔 '아 이 사람(나)의 방식이고, 이 사람만의 친절이구나'라고 이해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내 상상의 나래일 수도. 아무튼 30분 정도 후에 고객의 가족분들을 뵙게 됐다. 아까 전화 통화를 할 때보다 수배는 떨렸다. 심장이 떨리고 두려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윽고 눈가에 차올랐을 때,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adhd다. adhd가 내 감정을 더 과하게 속이고 있는 거야. 울 정도는 아니야.' 내가 adhd임을 깨달은 이래로,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고 메타인지를 활용한 일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생각을 하자마자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렇게 약간 긴장한 정도로 그들을 만났다. 나와 더 이상 엮일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또 큰일로 마주하게 된 가족분들은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마음을 느끼며 우선 나는 할 일을 했다. 설명했고, 안내했다. 정말 그뿐이었다. 지난번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족분들의 표정은 점점 풀리는 게 느껴졌다. 이내 웃으며 감사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입술 끝이 약간 씁쓸했다.

다음날, 가족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며 조심스레 수화기를 들었다. 다행히 별 일 없이, 일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려주려는 연락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가족분께서 자꾸만 말의 마무리마다 '흐흐'를 붙이시는 거다. 아, 그때 일이 미안해서 이러시는 건가. 어제 내 얼굴을 봤을 때 봤던 그 가족분들의 표정처럼, 내 마음도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오빠에게 이 일을 전하니, 오빠가 "가슴이 정말 콩닥콩닥 했겠다, 잇다야. 고생했어."라고 말했다. '콩닥콩닥'이라는 귀여운 단어를 듣고서야 요동쳤던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퇴근하는 길, 상대로 하여금 나를 이해시키는 일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충분히 고객들에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더 잘해야 한다고?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도 막무가내인데도 최소한 면전에서는 욕먹지 않고,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인데도 욕먹는 현실이 밉기도 했다. 나이를 먹으면 좀 나아질까? 내가 남자였다면 덜 당했을까? 경력이 많았다면 안 그랬을까?

또 한 번은 예전에 위 사례 같은 컴플레인 수준이 아니라 진짜 진상 고객을 대한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몇 달이 지나 다시 나를 마주치게 됐을 때가 있다. 본인도 부끄러운 줄은 아는지 내 눈을 못 마주치고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웃지 못할 우스운 장면이었다. 회상을 마치며 핸들을 꽉 붙잡고 다시 생각에 빠졌다. '다시 안 볼 사람이라 생각하고 막말을 하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구나, 언젠가 그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될 수도 있고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정말 민망하고 미안하니까.' 과연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타인일까. 얼마나 선하고 얼마나 악하며, 얼마나 정직하고 얼마나 비열한 인간일까. 돌이켜보면 나도 이런 사람으로부터 그닥 먼 사람은 아니다. 나름대로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렇지도 않은 때도 많은 것 같다. 앞으로라도, 최소한 앞으로나마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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