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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다 Nov 21. 2024

네 손길이 닿는 곳

이번주 월요일부터 조금씩 집안일을 하고 있다. 오빠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맘때면 늘 감기를 안고 사는 우리인지라, 대부분의 집안일을 하고 있는 오빠가 더 힘들 것 같았다. 20평대 아파트에 청소기를 돌리는 건 무진장 쉬운 일임에도 어느 땐(아니 거의 매번 인 것 같다) 발걸음 떼기가 천근만근이다. 막상 끝내고 나면 20분도 안 걸리는데, 귀차니즘은 어찌도 이리 커다란 중력을 선사하는지. 아무튼 곳곳을 청소하다 화장실 앞에 잠시 멈췄다. 화장실 문틈 사이에 낀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꼼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청소기를 돌리다 문득 고개를 들어 화장실을 보게 됐다. 폼클렌징이나 치실 칫솔 치약 같은 것들이 어지러이 올려져 있던 세면대 위 공간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매일 아침 한 움큼씩은 나오는 내 머리카락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샤워실 안쪽의 샴푸, 린스, 바디워시 따위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 같은 상황이 생소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하다. 정신없고 무심한 여자를 만난 대가로 오빠는 이렇게 늘, 조용히 쓸고 닦고 치우고 있던 것이다.

이제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시선이 앉는 자리마다 네 손길이 닿아있다. 사랑이 묻어 있고 다정함이 배어 있다. 당신은 청소를 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게 한숨을 쉬었을까, 짜증을 흘렸을까,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기대했을까, 아니면 평소처럼 단지 내가 편안하길 바랐을까. 네가 어떤 표정이었든 나는 무한히 감동할 거야. 반대로, 너는 어떨까. 실은 나도 요즈음 티 안나는 배려를 했다. 당신이 벗어놓은 운동복, 약 봉투, 읽고 난 책 같은 것들을 제자리에 뒀다. 나는 오빠처럼 태연하게 굴기는 어려워, 웃기게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기대하곤 했다. '내가 대신 치워줬는데, 알까? 오빠가 고마워했겠지?' 글을 쓰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몰라도 괜찮다, 네가 편안해진다면 그걸로 됐다. 뭐 또 금세 까먹곤 나 잘했지를 외치고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래 그렇네. 네가 남긴 흔적들이 그런 마음이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있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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