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기 위해 욕조에서 손목을 긋는 모습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손에 피가 잔뜩 묻은 손이 수화기를 잡아든다. 자살하기 위해 욕조에서 손목을 긋는 남성의 모습이 이 영화의 시작 장면이다. 화장실과 면도 칼, 붉은 핏자국들이 나에겐 익숙했다. 과거의 감각들이 손목에 생생하게 느껴지며 나의 중독 현상을 다시금 떠오르게 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살 속을 비집고 들어갈 땐 약간의 아픔이 느껴지지만 살아가면서 받은 고통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따끔거리는 아픔으로 삶의 고통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었으며, 나쁜 짓을 했다는 생각에 약간의 해방감도 든다. 학창 시절 나에게 자해는 부작용 없는 마약과 같았다.
내가 자해를 하던 이유와 영화 속 주인공이 자살 시도를 택한 이유는 같다. 그리고 내가 자해를 멈춘 이유와 주인공이 자살을 멈춘 이유도 같다. 우리는 모두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사람을 통해 치유받는다. 단편영화 커퓨는 사람에게 인간관계란 중요한 존재이며 무서운 존재인지 느끼게 해준다. 단 3명의 인물, 2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과 ‘플랩북’이라는 장치만으로도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상은 2.35:1 와이드스크린 비율로 등장인물들은 항상 나란히 하고 있는데 이런 연출이 등장인물 관계를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모순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에게서 생명을 얻고,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며,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사람에게 행복함을 받지만, 사람에게 증오와 분노를 받기도 한다.
사람으로부터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부정적인 상황이 닥칠 때 얽매어 괴로워할 뿐이다. 이를 인정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능동적인 태도를 가진다면 역설적인 관계에서 보다 편안해질 것이다. 결국은 나와 주인공처럼 고통에 의지하지 않은 채로 삶을 살아갈 긍정적인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