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 자두향, 어린시절의 추억들

by cheh

초록초록한 새순을 보았노라고, 알게모르게 홀리듯이 작은 새순이 잔뜩 흩어뿌려진 듯한 스프와 토스트를 먹었던 4월 초의 쌀쌀함을 기억한다. 스프 위에 뿌려진 치즈가 녹아 저들끼리 주욱-하고 서로 엉겨붙는 걸 바라보며 스프의 온기에 감사함을 느끼던 봄밤이 벌써 몇개월 전이다. 새순을 본 날로부터 3개월이 흐르고, 여름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씨를 만났다.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축축하고 눅진한 습기- 쨍한 초록이다 못해 서로들 몸을 비집고 서있는 통통하게 물이 오른 잎들.

대학 동기 중에 자취를 하는 오빠가 있었다. 어느 날은 닭볶음탕을 사먹으러 간다기에 갸우뚱했다. 닭볶음탕은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음식인데 어째서, 밖에서 돈주고 사먹는다는 건지 조금 의아했다. 나에게는 가을에 먹는 사과도, 여름에 먹는 자두도 돈주고 사먹는 과일이 아니었다. 시골 사과는 늘 팔다 남은 것들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상품이 되지 못하는, 까맣게 멍이 들고 곯거나 생채기가 난 것들이라 가게에서 파는 온전하고 크고 맨들거리는 사과를 보면 싱싱하다고 감탄을 했다. 그래도 자두는 아니었다. 시골 자두를 먹다가 서울에서 파는 자두를 만나면 "에게…" 소리가 나왔다.

논농사에 겸사겸사 과수원을 하는 시아버지를 둔 덕택에 우리 엄마는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시댁에를 가야했고 그녀의 딸은 공영 방송조차 희뿌옇게 나오는 시골로 4시간이고, 다섯시간이고 아빠 차에 실려 구불구불한 이화령 고개를 넘어가야 했다. 나보다 겨우 두세상 어린 동생과 엄마는 뒷좌석에, 나는 엄마 품을 포기한 대신 아빠 옆 보조석에 용감하게 혼자 앉아 안전벨트를 꼭 죄어맸다. 선택보다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했고, 착하고 씩씩한 당위성과 우월성을 부여하며 스스로 뿌듯하게 나는 늘 아빠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간 시골에서 어른들은 논일이며 과수원 일을 하고, 점심밥을 먹고 오후가 조금 지나면 과실 나무를 털러갈 때도 있었다. 그게 추석때는 대추나무가 될 때도 있고, 감나무니 밤나무가 될 때도 있었다. 여름에는 당연 자두나무.

파랗고 아주아주 커다랗고 두꺼운 타프천을 계곡진 나무 아래에 요령껏 깔고 장대로 자두가 잔뜩 달린 가지를 툭툭 치다보면 영글대로 영근 잘 익은 자두가 툭, 툭, 투투둑하고 떨어졌다. 남자 어른들의 수고로 얻은 달고 속노란 자두를 입을 양껏 벌려 한가득 베어 먹었다. 그 어린 여자 아이의 주먹만한 크고 빨간 자두를, 배가 터지도록 토독 껍질을 깨물어 먹고 또 먹었다. 할아버지도 팔순이 곧이고, 삼촌들도 퇴직할 때가 다 된 요즘 자두나무는 더이상 과실을 맺지 않는다. 과실을 맺더라도 이제는 파랗고 무거운 타프천을 끌고 나무 아래로 가서 장대로 가지를 쳐줄 사람이 없다. 시골에 가는게 연례행사가 된 서른 즈음의 나는 가게 앞에 쌓여있는 작디 작은 자두알 더미를 바라보며 저걸 돈 주고 사먹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한가득 담아본다. 하루밤새에 거진 스무알의 자두를 먹고 또 먹으며 자두의 단 향기와 여름의 녹진한 정취를 기억한다. 지금의 아쉬움을 담아, 오늘 밤을 또 미련하게 그리워할 미래의 나를 위해 서른 즈음의 어느 여름 밤 자두 향기를 오래오래 떠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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